[살며 사랑하며-박희선] 다시, 마지막처럼 살다

입력 2011-10-09 19:00


지난주 세상을 비추던 큰 별 하나가 졌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IT계를 이끌었던 천재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 그것이다. 주말에, 사진 한 장 공개하지 않고 조촐히 치러졌다는 그의 장례식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에겐 너무도 아까운 죽음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어쩌면 만족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그는 자신의 삶이 6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때에 애플의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인 아이클라우드를 발표했고(물론 그 자신이 개발한 것이었다), 두 달 전 새로운 인물 팀 쿡에게 CEO 자리를 넘겼다. 그보다 훨씬 전 건강 악화로 생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부터는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자서전 집필을 결심했고, 죽기 몇 주 전까지 전기 작가와의 인터뷰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일련의 뉴스 속에서, 삶만큼이나 죽음 앞에 당당했고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아름답게 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한 남자의 노력이 느껴져 나는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시금’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의 죽음에 또 하나의 죽음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우리에겐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떠난 스승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26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 슈워츠 교수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노교수가 애제자인 저자를 화요일마다 집으로 불러서 들려준 마지막 강의는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열렬한 찬사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나간 날들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추억하면서 참으로 멋진 인생이었노라, 일일이 감사하고 떠나간 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슈워츠 교수는 죽음이란 어느 날 급작스럽게 마주쳐 당하고 말 운명이 아니라 삶의 치열한 순간들처럼 잘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그 자신의 감동적인 스토리로 가르쳐줬다. 책을 읽을 당시 내게도 한 가지 바람이 생겼는데, 나도 그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이별할 시간이 꼭 주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잡스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의 소중한 가족과 은둔의 시간에 들어갔던 마지막 행보도 딱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도 “훌륭한 죽음을 위해 연습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죽음을 위한 연습이란, 매일 매일의 생을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라는 의미일 게다. 지난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잡스도 췌장암 선고를 받은 직후 이미 죽음에 관한 명언을 남겼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다.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위대한 사람들은 어째서 죽으면서까지 위대한 울림을 남기는가. 잘 죽고 싶은 자, 일단 잘 살아야 할 일이다.

박희선 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