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11) 주님이 원하는 일, 시키시는 일에만 집중하라
입력 2011-10-09 18:11
선교사 훈련 가운데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바로 거리 전도이다. 매주 수요일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강의에서 배운 대로 큰 백지에 복음을 전할 내용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뒤 커다란 합판에 그것을 붙여놓고 그림을 완성해 가면서 복음을 전했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거리 전도 한 번 해보지 않았는데 미국 땅에서 영어로 복음을 전하다니!’ 그것도 이따금 마이크를 들고 하도록 시켰다.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은 미국 훈련생들이 전할 때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 영어 발음이 제일 형편없는 내가 전할 때는 많이 모여 들었다. 동양인이 뭔가 영어로 소리치며 말하는 게 흥미로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훈련을 받자 얼굴도 좀 뻔뻔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거리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3월의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돌아오는 길에 항상 들렀던 흑인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했다. 확성기를 사용해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면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든다.
그날은 같은 훈련생인 미미 선교사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차례였다. 미미는 준비해 간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갑자기 바람에 합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담당 선교사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뒤에 가서 빨리 붙잡아 주라고 말했다. 나는 얼른 뛰어가 합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날따라 장갑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손이 시려오고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바람에 흔들리는 합판을 놓을 수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가 만일 한국에 있다면 누가 이런 걸 시키겠노? 젊은 사람들을 두고 나이 많은 나를 시키다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철희야, 그것이 앞으로 너의 일이고 너의 역할이다.” “예? 이것이 저의 일이며 역할이라니요?”
나는 순간적으로 불평했던 걸 회개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주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앞으로 나의 역할이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국 선교사님들을 뒤에서 합판을 들어주듯 힘을 다해 도우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 평범하게 들려주신 말씀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본부를 떠나오기 전날 우리 부부는 멘토였던 크로드 선교사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는 중국에서 수십 년 동안 선교를 하고 후에 미국 본부에서 사역을 하는 인자하고 조용한 노 선교사다. 크로드 선교사는 떠나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중한 메시지를 심어 주셨다.
“철희, 혜숙, 당신들은 선교지에 가면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하지 마시오. 우리가 하는 많은 일 중에는 주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귀는 너무 많은 일로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종종 주의 종들을 쓰러뜨리려 합니다. 주님이 지금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파악해 꼭 주님이 원하시는 일 한 두 가지만 하십시오.”
그는 많은 일보다는 주님이 원하는 일, 주께서 시키시는 일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이 말씀은 선교지에 있을 때나 한국 본부장으로 사역할 때나 나의 모토가 됐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