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에세이집 ‘칼과 황홀’… 동파육·홍어찜·눈·코·귀로 맛보는 황홀한 여행지 음식

입력 2011-10-07 18:11


이야기꾼 성석제(51·사진)의 음식에 관한 에세이집 ‘칼과 황홀’(문학동네)을 읽다 보면 그가 여행 중에 맛본 그 많은 음식들은 혀에서 녹기 전에 눈과 코와 귀에서 먼저 녹아버린다.

눈에서 녹는 대표적 음식은 중국 송나라 문인인 소동파로부터 전래됐다는 동파육이다. 2001년 항저우의 어느 호텔 부속 식당에서 말로만 듣던 동파육을 처음 접한 그는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길쭉한 흰 도자기 잔에 뚜껑이 덮여 있었고 그 속에 짙은 갈색의 동파육이 들어 있었다. 입에 집어넣는 순간 지방이 크림처럼 쉽게 잘라나갔다. 뼈가 들어 있었지만 비스킷처럼 쉽게 바스러지면 사각거리는 질감을 안겨주었다.”(96쪽)

돼지고기를 덩이째 술, 파, 간장, 설탕 등과 함께 넣고 불에 장시간 끓여 만든 동파육은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겉모양새에서 이미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음식인 것이다.

코에서 녹는 음식의 대표주자는 홍어찜이다. 때는 1984년. 군에서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한 그는 대학신문에 시를 공모했다가 ‘당선작 있는 가작’에 입선, 의기소침해 있었다. 심사위원이었던 교수는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그를 홍어전문집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홍어찜을 처음 먹었다. 한 점만 먹어도 입속이 훌렁 벗겨지게 강한 것도 아니고 서울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약하게 삭힌 것이라는데도 코끝이 아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114쪽)

홍어의 곰삭은 맛에 취한 그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다가 차량기지까지 가서 샛별을 바라보며 돌아 나오면서도 코를 실룩대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귀로 먼저 먹는 음식이란 그가 독일 뉘른베르크 선술집에서 만난 칵테일 ‘헤밍웨이’다. 헤밍웨이가 쿠바로 이주한 뒤 매일 밤, 바에 들러 얼음과 라임주스에 럼을 더한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을 열두 잔씩 마셨다는 데서 유래한 바로 그 ‘헤밍웨이’. 이를 주문한 그는 바텐더가 틀어주는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먼저 목을 축이며 긴 여행 끝에 도진 향수병을 달랠 수 있었다.

에세이집엔 그가 나고 자란 경북 상주에서부터 한국에서 비행시간으로만 26시간이 걸리는 칠레에 이르기까지 천하를 유람하며 맛본 음식들, 그것을 만들어낸 숙수들, 그 음식을 나누어 먹은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