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아이들의 ‘불편한 진실’… 안보윤 소설 ‘사소한 문제들’

입력 2011-10-07 18:10


젊은 소설가 안보윤(30·사진)의 네 번째 장편 ‘사소한 문제들’(문학동네)의 첫 장면은 놀이터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놀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건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들이다. 그들의 놀이란 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이 중학생 남자아이 황순구를 괴롭히는 일이다. 황순구에게 여중생을 겁탈하라고 명령하고 그 모습을 낄낄대며 지켜보는 그들에겐 폭력으로 서열화된 명령과 복종이 있을 뿐이다.

“계집애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다. 안 그래도 살에 뒤덮여 답답한 눈에 눈동자가 유난히 작아 희번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황순구는 일단 계집애 뺨부터 한 대 때린다. 손바닥이 울리고 덩달아 사타구니에까지 자르르 통증이 전해진다.”(15쪽)

계집애는 뚱뚱한데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짧은 팔다리를 가져 ‘슈렉’이라고 불리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아영이다. 황순구는 자신이 당해왔던 폭력을 고스란히 아영에게 되풀이한다. 황순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영은 동네 헌책방으로 숨어든다.

“여자아이에게선 어쩐지 동류의 냄새가 났다. 동류, 라는 것에 대해 두식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것이 아주 연약하고 비굴한 이름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말하자면 두식에게 있어 여자아이의 존재는 저기서 시비 걸 듯 핏대를 세우고 있는 남자아이만큼이나 거북한 것이다.”(43쪽)

서른아홉 살 동성애자인 헌책방 주인 두식은 그런 아영에게서 동류(同類) 의식을 느끼며 세상에 대해 닫아두었던 빗장을 풀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은 아영이 황순구의 성폭행 장소인 PC방 화장실에 불을 지르다가 다리에 화상을 입는 장면에서 또 다시 잔혹극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잔혹극 자체가 아니라 아영처럼 상처 받은 아이들의 재활 가능성에 있다. 치료를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아영을 바라보며 두식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제부터 아주 먼 길을 이 낡은 몸으로 걸어내야 한다. 꾸준히 걸어낸다면 그간 놓쳤던 행복의 퍼즐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245쪽)

소설은 영화 ‘도가니’가 던져준 불편한 진실만큼이나 불편하지만 우리 주변에 아직 아영과 두식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는 한 그 불편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