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담은 사진, 그 속에 세계사가 있다
입력 2011-10-07 17:45
매그넘 컨택트시트/편집 크리스텐 루벤/샘앤파커스
1968년 8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비노흐라드스카 거리. 탱크 위에 버티고 선 중무장 소련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무기 든 이와 겨냥 당한 이의 대비가 극적이다. 사진의 힘이 센 건 찰나를 붙잡기 때문이다. 사진이 담은 ‘순간’의 아쉬움. 그건 매력이지만, 동시에 궁금증이기도 하다. 대체 그 찰나의 앞뒤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소련의 프라하 침공 첫날을 담은 체코 작가 요제프 쿠델카가 그날 한 장의 사진만 찍은 건 아니다. 그의 카메라에는 달려가며 깃발을 흔드는 시민들과 반대편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탱크까지 많은 이미지들이 남아 있다. 그걸 엿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비밀은 밀착인화지(컨택트시트)에 있다.
세계적인 보도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이 공개되지 않은 밀착인화지 사진을 담은 ‘매그넘 컨택트시트’를 냈다. 매그넘 대표 사진가 69인의 작품과 함께 그들이 작업실 한쪽에 보관하고 있던 435장의 밀착인화지가 처음으로 책으로 묶였다. 작가는 수백 장의 밀착인화지 중에서 원하는 한 컷을 고른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와인창고에 내려가 명품 와인을 찾아내 뚜껑을 따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간택’의 과정이다. 그걸 통해 드디어 세계가 만나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화지에는 시간의 전개과정과 공간의 배치,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움직임이 순차적으로 기록돼 있다. 덕분에 독자는 버려졌던 인화지를 통해 사진 앞뒤로 이어지는 시간과 사진 밖 풍경까지 만날 수 있다. 사진을 둘러싼 이야기가 한결 풍성해지는 것이다.
전 세계 동시 출간된 책의 가격은 무려 18만5000원. 홍보용 사진도 언론사별로 딱 3장씩만 쓸 수 있다. 그것도 지정된 9장을 A, B, C로 나눠 그중 한 그룹을 선택해야 한다. 많이 공개되면 선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다. 20만원 가까운 가격과 까다로운 조건을 양해할 만큼 놀라운 사진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수십 장의 엇비슷한 사진 중 하나가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무대 뒤 배우 대기실을 살짝 엿보는 느낌이랄까. 김동규 옮김.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