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8쪽 분량 매뉴얼 던져주고 “교사들이 말 안들어…” 성폭력 대처 ‘탁상행정’ 논란

입력 2011-10-06 18:49


서울시내 학교에서 성추행과 성폭행이 잇따르고 있지만 서울시교육청의 안이한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시교육청은 ‘성폭력 매뉴얼’(사진)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지만 피해 학생을 보호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1학년 여학생이 3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4일 또 다른 중학교에서도 남학생 7명이 여학생 1명을 건물 옥상에서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시교육청은 사건 당시 “교사용 성폭력, 유괴, 납치 학생 사안처리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매뉴얼은 시교육청이 지난해 7월 제작한 것으로 A4 용지 절반 크기의 8쪽 분량 소책자다. 매뉴얼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적극적으로 분리하고 신상정보 등에 대한 비밀 유지와 피해자 인권 보호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 성추행·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중학교에서는 당시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은 약 20일간 함께 등교했다.

사건이 드러난 직후에도 학교 측이 “심신안정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피해 학생을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다른 학생들이 알게 됐다. 매뉴얼 지침이 현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도 “교사들이 매뉴얼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뉴얼 내용 자체도 문제다. 매뉴얼은 ‘학생 사건 발생 시 사안 보고, 피해자 보호, 신고 등 신속하고 투명한 사건 처리’ ‘가해 학생에게 재발방지 교육 강화’ 등 원론적 이야기만 나열하고 있다. 교육청은 학교 보고를 받은 즉시 교과부로 사안을 보고토록 지시했지만 이 역시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매뉴얼도 주제와 상관없는 그림 등을 빼면 실질적인 내용은 3쪽에 불과하다.

매뉴얼은 교사에게 제대로 배포되지 않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모든 교사에게 매뉴얼 관련 교육을 실시할 수 없어 매뉴얼을 학교당 2∼3부씩, 교감과 생활지도부장 등에게만 배포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이 성폭력 예방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학교폭력 설문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객관식과 주관식이 혼합된 익명 설문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해 학교폭력을 점검하라”고 지시했지만 구체적인 설문 양식도 마련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 던져주고 ‘친구나 나의 고통에 대해 쓰라’고 하는데 누가 제대로 작성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