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존경받을 자격
입력 2011-10-06 18:12
한국어를 배운 지는 오래 됐지만 내게 문법은 여전히 골칫덩어리다. 따라서 내 입에서 100퍼센트 완벽한 문장이 나오는 일도 드물다. 특히 존경어가 어려운데, 문법구조는 여러 번 배워서 잘 알지만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원칙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한국어 수업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존경어는 연배나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적거나 덜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똑같이 존경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거만하고 비호감인 대기업 부장님이 예의바르고 상냥한 청소부 아줌마보다 더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나이나 사회계층을 떠나 똑같이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난 것은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성신여대 근처 ‘구두병원’에서 일하는 그는 나이 지긋한 구두수선공으로 항상 친절하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 구두 고치는 솜씨도 좋아서 버려야 할 것 같던 신발도 반짝반짝 새 신발로 만들어낸다.
그런데 구두 고치는 솜씨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영화 같은 그의 인생역정이다. 그는 1960년대에 경희대학교에 다니다가 어떤 사고에 연루됐는데 일이 꼬여서 무고하게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그 후 학업을 중단하고 신발공장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웠다.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아내와 함께 맨해튼 한복판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는 그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아내가 가게를 지키며 힘들게 돈을 벌었다.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을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 빚보증으로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런 운명의 장난에 휘둘렸지만 그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비좁은 구두병원에 앉아 구두를 깁는다. 매번 삶의 기반을 잃고 남겨진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날 날이 없고 농담하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불만과 자기연민에 빠질 만도 하건만 사람들이 가져온 신발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정성껏 수리하며 어느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존경어가 절로 나온다.
서열이 뚜렷한 한국사회에서는 학력, 재산, 직업, 외모, 집안 같은 요소가 사회적 우열을 결정한다. 이 요소들은 면접이나 소개팅에서 후보자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가 정말 통장 잔고나 명함에 박힌 직함, 성형외과에 가서 고친 얼굴로 매겨지는 것일까? 인맥, 음모와 술수, 아첨으로 승진하는 사람보다 하루하루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 훨씬 가치 있는 것 아닐까?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서열이 꼭 존재해야 한다면 나는 ‘소유와 무소유’에 근거하는 사회적 카스트 제도 대신 친절과 호의의 서열을 주장하고 싶다. 만약 그런 서열제도가 있다면 그 구두병원 아저씨는 분명히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