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Art Talk]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걸작
입력 2011-10-06 18:34
세계적인 미술관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을 펼치면 세기의 걸작, 위대한 걸작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미술애호가들을 매혹시키는 이 ‘걸작’이라는 단어!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걸작이라는 단어는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와도 같다. 과연 걸작은 무엇이며 위대한 작품과 평범한 작품을 가르는 잣대는 어떤 것일까?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은 걸작의 의미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복제했을 때 돋보이는 작품이다.”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걸작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사하고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아트상품으로 만들어 무한복제하고 있으니까. 미술평론가 허버트 리드에 따르면 걸작은 종교와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언뜻 보면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걸작을 창조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종교적 감수성으로 부를 만한 것들이 들어있다.”
하긴 걸작과 종교는 비슷한 점이 많다. 미술사의 거장들은 불멸을 꿈꾸며 창작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다. 감상자들은 예술가의 혼이 담긴 작품을 신성한 것으로 숭배한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기억 속에 떠올려보라. 마치 예배당에서 종교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자세로 작품을 감상하지 않던가.
대체적으로 미술계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걸작으로 부른다. 내용이란 예술가의 감정이나 생각, 아이디어, 상상력이며, 형식이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숙련된 기술을 가리킨다. 즉 머릿속의 구상을 미술재료와 완벽하게 융합했을 때 걸작은 탄생한다. 내용은 풍부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해도,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내용이 빈약해도 걸작은 태어나지 않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훌륭한 작품이 걸작이라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면 일본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주장에 귀 기울일 만하다. 사이토는 저서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걸작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1.탁월한 표현력, 2.고유한 양식을 만드는 스타일, 3.자기세계의 창조, 4.독특한 아이디어, 5.창작에 대한 몰입.
이렇듯 혹독한 검증과 통과의례를 거쳐 미술사에 등재된 걸작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시민들의 예술적 소양과 심미안,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재가 되고 심지어 인생을 바꾸거나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2006년 영국 신문 ‘가디언’의 미술기자 조너선 존스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걸작 20점’을 선정해 지면에 소개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피카소의 ‘게르니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렘브란트의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산’ 등 20점의 명화는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도 있다.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여주인공 미셸에게 걸작이란 세상의 모든 빛을 의미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미셸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있으니, 실명하기 전에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인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직접 보는 것이다. 미셀은 자신을 사랑하는 곡예사 알렉스의 도움을 받아 미술관에 몰래 들어가지만 안타깝게도 그토록 열망하던 그림을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손가락으로 그림을 만지면서 감상하는 미셸의 모습에서 걸작이 한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죽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한 것일까? 수 년 전부터 세기의 명화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대형전시회가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다. 굳이 해외유명미술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발품만 팔면 걸작들을 국내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뛰어난 미술작품은 감상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걸작을 감상하면서 예술가의 특별한 감정과 생각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거나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감정이입과 상호교감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걸작을 찬미한 것이리라.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중략) 예술 덕분에 우리들은 단 하나의 세계, 즉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그 세계가 스스로 증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은 그만큼 많은 세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비나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