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아성 넘보는 중고신인 ‘아3인’과 ‘졸탄’… 승자는?

입력 2011-10-06 17:58


우리는 가끔 기발한 코미디를 만난다.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해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개그. 웃음을 뛰어 넘어 작은 놀라움을 안겨주는 무대. 근래 이런 코미디를 꼽자면 tvN ‘코미디빅리그(코빅)’에 출연하는 개그팀 ‘아3인’과 ‘졸탄’의 무대를 들 수 있겠다. 두 팀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보는 이를 탄복하게 만든다.

이들은 쟁쟁한 개그맨 11개 팀이 ‘코미디 배틀’을 벌이는 ‘코빅’에서 매주 상위권을 달린다. 지난달 17일 첫 방송 이후 ‘아3인’은 1, 2주차에 각 2등, 3주차엔 4등을 차지했다. ‘졸탄’은 1, 2주차엔 각 5등이었지만 3주차엔 2등으로 올라섰다. 두 팀 모두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중고 신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조금은 놀라운 성적이다.

‘코빅’은 KBS ‘개그콘서트’ 출신 김석현 PD가 연출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매주 경연이 끝나면 개그평가단 200명이 투표해 순위가 결정되는데, 10번의 경연이 끝나면 누적 승점이 가장 높은 팀에 상금 1억원이 주어진다. 현재까지는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로 구성된 ‘옹달샘’이 3주 내리 1등을 차지하며 앞서나가고 있지만 순위는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과연 ‘아3인’과 ‘졸탄’은 옹달샘의 아성을 깰 수 있을까. 지난 2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아3인’을, 사흘 뒤인 5일 서울 서교동 한 식당에서 ‘졸탄’을 차례로 만났다.

당신이 ‘코빅’ 방청객이라면 ‘아3인’ 무대에 긴장해야 한다. 조폭 두목 이상준(29)이 무대에서 내려와 당신 무릎에 앉는 순간, 당신은 이때부터 ‘송 실장’으로 호명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방청객이 아닌, ‘아3인’과 함께 연기를 펼치는 개그맨으로 거듭나야 한다.

송 실장은 이상준과 한 편이 돼 예재형(30) 문규박(27)을 상대로 대결을 펼친다. 두목인 이상준이 총알을 과장된 몸짓으로 피하면 송 실장도 따라해야 한다. 얼토당토않은 일이 이어지고 곤혹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참고 이겨내야 한다. 당신은 송 실장이니까.

나머지 방청객도 콩트 내내 이상준이 거느린 조직원으로 간주되니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이상준이 객석을 향해 “종로 김두한 나와”라고 소리쳤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내 딸이 김을동 닮았다 싶으면 손들자!”

내용이 이런 만큼 코너명 역시 ‘관객모욕’이다. 관객과 연기자가 동화되는 공개 코미디의 장점이 극대화된 코너라 하겠다. 새로운 코미디의 등장에 관객 호응과 시청자 반응은 모두 뜨겁다.

‘아3인’은 녹화에 임하기 전까진 자신들의 성적을 5위권 정도로 내다봤다고 한다.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첫 리허설을 지켜본 뒤 기대치를 낮췄다. 동료 개그맨들 무대가 자신들보다 훌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상준은 “리허설을 하는데 우린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하다 보니 스태프들도 ‘쟤네가 지금 뭐하는 거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라. 주눅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녹화에 들어가니까 반응이 좋더라고요. 제가 객석을 등지고 서서 ‘내 뒤에 우리 조직원들이 안 보이나’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관객 역시 연기자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거잖아요. 서로 공감하며 극이 진행되니 웃음이 계속 만들어지더라고요.”

‘아3인’은 방송을 한 달 앞둔 지난 8월 만들어진 팀이다. 2006년 SBS ‘웃찾사’에서 ‘이건 아니잖아’ 코너 등에서 함께 활동한 이상준 예재형이 알음알음 알게 된 문규박에게 합류를 제안하면서 결성됐다. ‘아3인’은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이랑 인지도 좀 주세요’의 줄임말. 이들은 “우리 팀은 인지도를 쌓는 게 ‘코빅’에 출연하며 세운 가장 큰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셋은 공연에 임하기 전 무대 뒤에서 몰래 객석을 보며 송 실장을 물색한다고 했다. 송 실장 선택 기준은 간단했다.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지목되면 직접 상황을 만들어갈 것 같은 사람. 문규박은 “우리 코너의 주인공은 송 실장”이라며 “송 실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즉석에서 내용이 달라지니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재형은 “송 실장이 된 분들 역시 평생 남을 추억이라 생각하시는지 이제는 적극적으로 임해주신다”며 감사해했다.

이들은 선배이자 ‘코빅’에 출연하는 경쟁자 변기수(32)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지난해 ‘웃찾사’가 폐지된 뒤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기수형이 김석현 PD를 만나게 해주고, PD한테 ‘얘네가 개그를 못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추천해주셨어요. 정말 고마운 형이죠.”

‘졸탄’ 세 멤버는 모두 팀 이름(ZOLTAN)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인 정진욱(28) 목걸이엔 팀명 뒤 숫자 ‘1’이 쓰여 있는데 반해 이재형(30) 한현민(30) 목걸이엔 각각 ‘2’ ‘3’이 새겨져 있었다. 이재형과 한현민에게 막내가 ‘1’인 이유를 물었다. “얘가 우리 팀 리더니까요.”

하지만 ‘리더’ 정진욱의 팀 내 위상은 금세 확인됐다. 인터뷰 도중 용변이 급해 화장실에 들어간 이재형은 매니저가 있는데도 “리더, 휴지∼”라고 외쳤다. 정진욱은 휴지를 챙겼고 한현민은 “이게 바로 리더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두 ‘형님’은 재미없는 답변이 예상되는 질문엔 “이번엔 리더가 대답하지”라며 정진욱을 바라봤다. 짓궂지만 웃긴, 천생 개그맨들이었다.

이들의 코너인 ‘졸탄극장’엔 이처럼 세 사람의 재기발랄한 모습이 그대로 묻어 있다. ‘졸탄’ 개그의 힘은 반전. 콩트는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코믹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 극의 절반을 할애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그런 코미디다.

하지만 극이 끝나고 암전, 시간을 되돌린다는 의미의 ‘리와인드(REW)’라는 문구가 나타난 뒤 다시 조명이 켜지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세트 뒤 모습이 드러나고, 아까 본 장면 이면에 더 웃긴 ‘실체’가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극에서 사용된 아이스크림은 소품 아이스크림이 없어 무스로 급히 만든 가짜였다. 백설공주가 먹은 사과엔 살충제가 잔뜩 묻어 있었다….

“사실 첫 녹화 전까지 굉장히 불안했어요. 세트 앞뒤가 바뀌는 시간이 있다 보니 방송이 아닌 대학로 무대에서 시험해보기 힘든 아이템이었거든요. 또 관객 입장에서는 앞 상황을 기억해놔야 세트 뒤 모습이 나올 때 웃을 수 있으니 우리 코너를 어렵게 느낄 수 있어 걱정했죠.”(한현민)

2003년 ‘웃찾사’로 데뷔한 세 사람은 팀 차원의 개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2008년 졸탄을 결성했다. ‘코빅’에 출연한 계기는 내로라하는 개그맨들 사이에서 실력을 평가받고 싶었기 때문. 이들의 최종 목표는 그냥 ‘상위권’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인 만큼 ‘코빅’은 순위 발표 이후 출연자끼리 약간은 놀리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팀들 간 실력이 1∼11등까지 매겨지는 엄연한 자존심 싸움이기 때문이다. 녹화 이후엔 MBC ‘나는 가수다’처럼 성적이 안 좋은 출연자 표정은 어둡다.

이재형은 “어제 녹화가 있었는데, 전 주에 하위권이었던 팀이 대부분 코너를 새로 짜왔고 반응도 좋았다”며 “앞으로의 순위 역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남은 방송을 통해 졸탄이 하는 개그는 재밌다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심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졸탄’이 궁극적인 라이벌로 생각하는 팀은 전통의 개그 듀오 ‘컬투’다. 앞으로 자신들이 그려갈 계획도 3단계로 세워 놨다. ①누구나 아는 ‘재밌는 팀’이 된다. ② 방송뿐만이 아니라 팀 차원의 공연을 통해서도 실력을 인정받는다. ③ 넌버벌(비언어) 코미디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 과연 ‘졸탄’의 이러한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