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에큐메니컬 융합은 세계적 흐름”
입력 2011-10-05 21:02
최근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준비위원회 참석차 방한한 롤프 힐레(64)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에큐메니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 벡스코에서 가진 박성원 WCC 중앙위원(영남신대 석좌교수)과의 대담에서 “WCC의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튀빙겐대 신학대 학장을 역임한 힐레 위원장은 1986년부터 2008년까지 WEA 신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왔다. 그의 WCC 총회 준비위원회 참석이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방한 롤프 힐레 WEA 에큐메니컬위원장-박성원 WCC 중앙위원 대담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인사가 WCC 회의에 공식 참석했다. 한국 성도 입장에선 좀 당혹스러울 것 같다.
△힐레 목사=WEA는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 보수적인 교회 교인이 개인회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다. 반면 WCC는 교파와 교단이 참여한다. 내가 소속된 교단은 WCC 회원교단이며, 개인적으론 WEA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생소하겠지만 세계적으론 이런 게 보편화돼 있다. 이번에 WEA 에큐메니컬 위원회를 대표해 WCC 총회 준비위원회 주제연구소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박 목사=세계적인 흐름에서 봤을 때 복음주의 진영으로 대표되는 로잔언약 그룹과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대표되는 WCC 그룹은 신학적으로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며 근접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준비위원회도 조직의 50%를 오순절교회 인사와 복음주의권 인사를 배정했다.
-하지만 세계교회는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힐레 목사=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나뉘어 딴 길을 걷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 WCC가 1948년 창설됐을 때만 해도 복음주의자들은 많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남부 아프리카의 독립투쟁을 지원하게 됐고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교회가 복음 전도의 사명은 뒷전이고 헌금을 폭력적인 활동에 사용한다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그 결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74년 로잔에서 시작한 게 로잔운동이다. 그는 기조 강연에서 WCC의 신학운동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 후 양 진영은 서로 갈등하게 됐다.
-그렇다면 요즘 상황은 어떤가.
△힐레 목사=70년대와 오늘날 구도는 상당히 다르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에반젤리컬화(복음화)’ 되고, 에반젤리컬이 에큐메니컬화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서로를 배움으로 상당 부분 융합이 된 상태다. 과거 에큐메니컬 운동과 전혀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박 목사=복음주의자들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수 교단조차 사회 책임을 절감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1998년 하라레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모토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결국 인간이 사회를 변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즉 주님의 주도적 변혁에 동참하자고 선포한 것이다. 2006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WCC 총회에선 주제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소서’였다. 부산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다. 생명, 정의, 평화 모두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며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WCC가 상당히 복음주의권에 접근한 게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2013년 WCC 총회와 2014년 WEA 총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박 목사=복음을 넓게 보려는 양쪽의 시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진짜 복음주의적이라면 에큐메니컬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두 개는 같은 것이다. 특히 2013년 WCC 총회와 2014년 WEA 총회는 한국교회에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서로 대치점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융합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교류의 장을 제공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힐레 목사=각자 총회가 다른 역사와 회원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와 성경을 바라보며 복음 전도와 사회 선교,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이라는 성경적 균형을 찾아갈 때 복음주의 운동, 에큐메니컬 운동 모두 서로 완성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WCC 운동에 대해 한국교회가 안심해도 되나.
△힐레 목사=WEA 입장에서 WCC의 신앙고백을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과거 WCC가 스스로 천명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던 일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환영하고 기도로 동역하면 될 것이다. WCC 총회에는 총대나 참관인으로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복음주의 지도자도 많다.
△박 목사=에큐메니컬 운동의 근본정신이 성경에 있다는 것은 WCC 헌장 제1장 1조에 들어 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WEA가 더 사회적이고 WCC가 더 복음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21세기 기독교는 교회 간 일치는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도 힘을 모아야 한다.
부산=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대담 전문은 인터넷 미션라이프(missionlife.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