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시위’ 진보·보수 대결 양상

입력 2011-10-05 18:12

미국 젊은 세대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진보·보수 간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위대는 기존 정치권에 불신을 나타내면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일자리 창출 법안 통과를 원하고 있다. 또 부자 증세와 건강보험 개혁 등을 촉구한다. 그동안 별 언급을 하지 않던 공화당 측은 시위를 “위험한 계급투쟁”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위로 개혁 이룬다”=시위를 지지하고 있는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이른바 ‘미국의 가을’을 완성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미 CBS방송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동의 시민혁명인 ‘아랍의 봄’처럼 시민 힘으로 개혁을 이루자는 것이다.

첫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시민단체들은 재정적자 감축을 논의할 미 의회의 특별위원회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특별위원회가 고용과 건강보험 관련 예산을 줄이지 못하도록 시위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위활동 시한인 11월 중순까지 전국에서 시위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은 미 상원에서 학교운영위원회까지 모든 공공조직에서 진보적 인사를 늘린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각계에서 진보세력의 발언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시위 세력이 보수 유권자 세력인 ‘티파티’와 이념만 정반대일 뿐 형체가 비슷한 집단으로 조직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시위대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치어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오바마가 없어도 된다’면서 자신들은 제도권 정치에 이미 실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의 환경담당 자문위원을 지낸 환경운동가 반 존스는 “워싱턴 정계와 월가에 대한 신뢰는 제로 수준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공화당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해 “위험하다. 이것은 계급투쟁”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지난달 부자 증세를 뜻하는 이른바 ‘버핏세’를 도입하자고 했을 때도 “계급투쟁하자는 거냐”며 반발했다.

◇잇따른 지지=월가 시위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5일 오후 시위대의 맨해튼 거리 행진에는 미국교원노조와 뉴욕운송노조, 뉴욕시립대교직원노조가 참여했다. 시위대 홈페이지(www.occupywallst.org)에 따르면 미 최대 노조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도 연대를 표명했다.

백악관 제이 카니 대변인은 오바마의 시위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와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시민들이 현 경제 상황에 좌절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실업률이 9% 이상이다.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며 시위에 공감을 나타냈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유명인도 시위 지지 입장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