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인감도장·고등어 꼬리’ 평이한 詩語로 깊은 울림… 시인 이장근, 첫 시집 ‘뀐투’ 펴내

입력 2011-10-05 17:50


범박한 일상 속에서 건져낸 평이한 언어를 통해 삶의 경이를 노래하는 것은 좋은 시의 관건이다. 시인 이장근(40)의 시가 그렇다.

“청춘을 계란 한 판에 비유하다/ 바위를 떠올린다/ 맞아, 그땐 바위치기를 했지/ 깨졌지만 바위를 더럽혔다고/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지도 않았다고/ 비린내를 풍기고 다녔지/ 지금은 왜 바위를 치지 않는지/ 손에 쥐고 따땃하게 익혀 홀랑 까먹는지/ 두 번째 판의 삼분의 일이나 까먹은/ 내 몸에서 닭똥 냄새가 난다”(‘계란 한 판’ 부분)

찜질방에 갔다가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던 질풍노도의 청춘 시절을 떠올리는 이 시편은 자신의 몸에 밴 계란 비린내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주제 삼아 평범한 일상을 빛나는 시적 상상력으로 갱신하고 있다.

그의 첫 시집 ‘꿘투’(도서출판 삶이보이는창)는 이렇듯 모든 실존 현상들이 교차하는 일상의 틈새에 자신의 삶을 기입함으로써 시의 운용 체제를 활성화하고 있는 게 큰 장점이다. 단순하고 평범할 것 같은 일상의 표피는 그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내면으로 갈아 끼워진다.

“직장을 얻고 인감도장 판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에게/ 이름 석 자 한자(漢子)로 적어주자/ 도장 책자를 펼쳐 한참 들여다보더니/ 또, 한참을 판다/ 조각도처럼 움직이는 그의 혀/ 도장을 파는지 기억을 파는지/ (중략)/ 남기기 위해 파내야 하는/ 생각해보면 도장 찍을 때마다/ 나는 이중적이었다/ 은행 돈 파내 집을 살 때도 그랬고/ 한 여자를 호적에서 파내 아내로 맞을 때도 그랬다”(‘인감도장’ 부분)

이장근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깊은 울림을 ‘따뜻한 서정’과 잔잔하지만 가슴에 오래 남는 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반찬으로 올라온 고등어 꼬리에서 오십을 넘어서야 대리 꼬리를 단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시는 그가 시란 민중의 노래라고 믿는 쪽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고등어를 구워 먹는다/ 보들보들한 가슴 부위는 금세/ 앙상한 뼈만 남는다/ 꼬리 부위로 갈수록 떨어지는 육질/ 덩어리가 뭉쳐 있는 듯 딱딱하다/ (중략)/ 오십 넘어 대리가 된 아버지도/ 회사의 꼬리였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슬픔 덩어리로/ 집과 회사 사이를 바동거렸다/ 슬픈 몸짓을 보며 나는 자랐다/ 바동거리며 사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꼬리”(‘꼬리의 근성’ 부분)

‘미래파’나 ‘제3의 서정’이라는 포스트모던한 언어 유희가 문학적 현기증에서 불러일으키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의 시는 진솔하고 따스하다. 시인이야말로 시인이기 전에 민중이어야 한다는 시적 태도가 신뢰감을 주는 시집이다.

“임종 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높은 ‘시’를 내셨던 할머니/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찰나에 내신 음은/ 끝이자 시작인 ‘도’였을 것이다/ 거친 숨 들이마시며/ 코 골아 내던 음은/ 낮에 밭을 갈다가 후-내뱉던 음과 같은 자리였다/ 어느 자리도 소홀히 건너뛴 적이 없이/ 한 음 한 음 밟고 가신 길/ 갑 속에 넣고 땅속 깊이 묻어도/ 땅을 뚫고 나오는 푸른 가락/ 할머니는 참 좋은 하모니카였다”(‘하모니카를 불다가’ 부분)

그가 쓴 하모니카의 범상치 않은 곡조에 목울대가 울컥거린다면 당신도 시인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