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장애인들 위해… ‘배리어 프리 영화’ 국내서도 만든다

입력 2011-10-05 21:30


독립영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 배우 엄지원 류현경….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화인들이 주도해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 프리 영화’를 만든다. 배리어 프리 영화제 설립추진위원회는 이달 하순과 다음 달 중순 서울과 경기도 부천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시범상영한 후 내년에 제1회 배리어 프리 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영화는 일반인들처럼 영화를 즐기기 어려운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특별 버전의 영화를 말한다. 한글 자막과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음성을 넣은 기존 장애인용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훨씬 다양한 정보들을 담는다. 대사 자막은 지금처럼 가로로 배치하고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각종 효과음과 음악을 설명하는 자막은 세로로 깔아 청각장애인들의 이해를 돕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대사 중간중간에 장면과 상황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설명하는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이 삽입된다.

영화제를 처음 제안한 이은경(42) 영화사 조아 대표는 5일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시청각장애인이 50만명을 넘는데 이들은 영화에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며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진위원회에는 이 대표를 비롯해 영화감독 임순례, 연기업 충주맹학교 교장, ‘울지마 톤즈’를 제작한 영화사 마운틴픽쳐스 이재식 대표, 이현정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추진위원회는 우선 199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던 일본 원로 감독 히가시 요이치의 ‘술이 깨면 집에 가자’(2010)와 올해 개봉된 스릴러물 ‘블라인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양익준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류현경이 목소리 연기를, 엄지원이 해설을 맡는다. 안상훈 감독과 오성윤 감독도 자신의 영화를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연출한다.

추진위원회 측은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들 영화 3편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각각 2회씩 상영하고, 다음 달 15∼17일 부천 오정아트홀에서 하루 1편씩 상영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일 양국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엄도 열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1월 28∼30일 규슈 사가현에서 제1회 배리어 프리 영화제를 개최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고 추진위원회 측은 전했다. 당시 영화제에서는 일본 영화 9편과 한국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상영됐다.

이 대표는 “지금도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영화가 장애인영화제나 일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영화의 풍성한 맛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리어 프리 영화는 영화감독과 전문 성우 등이 주도해 만들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보며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이나 노동자들이 보기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개봉영화를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만들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