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소울서퍼] 주님은 왜 이런 식으로 시험하실까?
입력 2011-10-05 17:44
황금빛 햇살을 가득 머금은 하와이 해변 한 가운데, 이제 막 서핑을 끝낸 13살 동갑내기인 배서니와 앨러나는 서핑보드 위에서 한가로움을 만끽한다. 마치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그러나 불행은 바닷속에서 배서니를 향해 소리 없이 다가온다. 평온한 바닷물을 뚫고 올라온 삼각뿔은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배서니의 한쪽 팔을 삼켜버린다.
2011년 4월에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소울 서퍼’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4위에 랭크돼 총 수익 4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기존의 ‘파이어 프루프’의 흥행 기록을 경신한 올해의 기독교 영화다. 상어에게 물려 한쪽 팔을 빼앗긴 뒤 이를 극복하고 전국 서핑대회에서 우승한 배서니 해밀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살아 있는 기적으로 불리는 배서니의 삶은 완전할 때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 한쪽 팔로 머리를 묶는 일조차 그녀에게는 프로메테우스가 지구를 떠받치는 일만큼이나 버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예레미야에서 말씀하시지만 왜 이런 시련이 나한테 일어나야 하는지, 주님은 왜 이런 식으로 날 시험하시는지를 원망한다. 어쩌면 실제 배서니의 삶은 훨씬 고통스럽고 더 비관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맥나마라 감독이 선택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그녀의 고난 극복 과정을 놀라우리만치 담대하게 보여준다. 그날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기적처럼 그녀를 붙든 것은 해밀턴 부부에게서 물려받은 침착함이었다. 재활의 여정에 함께한 것은 가족의 신뢰와 무한한 사랑이다.
그러나 이 모든 여정의 바탕에는 주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배서니의 믿음이 있다. 아버지는 배서니의 재기를 위해 그녀가 한 팔로 서핑보드를 잡고 파도 위에 설 수 있도록 보드 위에 손잡이를 만든다. 어머니는 한쪽 팔이 없는 현실을 배서니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전국서핑대회를 앞두고 태국으로 미션 트립을 떠난 배서니는 쓰나미에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한 태국 여인의 눈물을 마주한다. 그 순간 여전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신앙이 있음을 자각하고 비로소 주님께서 예비하신 큰 뜻을 깨닫는다.
맥나마라 감독은 감정의 고저를 통한 드라마의 증폭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배서니의 희망의 여정에 관객들을 동참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독교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통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소울 서퍼’는 태평양의 맑고 푸른 하늘과 크리스털처럼 크고 시원한 파도와 더불어 시종일관 밝고 생기 넘친다. 젊은 희망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서핑대회 마지막 결승전. 배서니는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한 커다란 파도를 느낀다. 그 파도를 잡고 위로 올라가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가 근접 촬영으로 파도가 말려드는 관 속으로 뛰어든다. 청량하게 해안 쪽으로 부서지는 물결은 쓰나미처럼 사람을 해하는 물결이 아니라 배서니의 희망을 나누어 주려는 물결이다. 배서니가 견뎌낸 모든 인내의 세월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헌트’와 ‘파 프롬 헤븐’으로 뉴욕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데니스 퀘이드’가 각각 해밀턴 부부로 열연해 배서니를 향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준다. ‘소울 서퍼’는 올 9월 29일부터 서울극장에서 열린 제9회 서울기독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이 밖에 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는 아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졌던 경찰 맥을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그레이스 카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치유’의 감성으로 풀어낸 배창호 감독의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 ‘여행’ 등 14개국 40여편의 영화들이 관객을 맞았다.
조현기(서울기독교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