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태현이의 ‘쑥떡 사건’

입력 2011-10-05 17:44


여름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려고 앨범을 펼치는데 ‘툭’ 돌돌 말린 종이가 떨어집니다. ‘이게 뭘까?’ 생각하며 종이를 펼쳐 보니 올 여름성경학교를 마치면서 아이들과 또 함께했던 선생님들이 서로 돌려가며 하고 싶었던 말, 감사의 말,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자신의 속맘을 적었던 롤링페이퍼였습니다. 쭉 읽어가던 저는 태현이의 글 앞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엄마 같은 사모님. 6년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길 때 같이 있어 주시고 부모님 섬에 계셔서 안 계실 때 제 곁에서 부모님처럼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태현 드림.”

무엇이든 잘게 잘라 주는 버릇 생겨

태현이 부모님은 땅끝에서 배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어릉도라는 섬에서 김 양식을 하시는데 주로 섬에 계시기 때문에 태현이와 여동생 득영이는 태현이 부모님의 부탁으로 1주일에 4∼5일은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2006년 가을 태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발생했습니다. 쌀쌀한 가을날이라 저녁에 김치찌개를 해 주려고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썰어서 볶고 물을 부어 끓이다가 마지막에 대파를 넣으려고 도마에 대파를 썰어 넣고 하얀 대파 머리 부분만 남겨 놓았는데 태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배가 고팠는지 그 대파 머리 부분을 가래떡인줄 알고 집어 먹으려다가 대파인걸 알고는 저에게 “사모님, 따끈한 가래떡을 설탕에 찍어 먹고 싶어요”라는 겁니다.

다음날 동네 떡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반말 정도 뽑아 주십사 부탁드리고 나오는데 떡집 아주머니가 쑥떡 한 덩어리를 들고 나오시면서 “지금 막 나와서 아주 따끈해요. 드세요. 가래떡은 내일 오후에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올 때쯤으로 맞추어서 가져다 드릴게요.”

손에 들려주신 쑥떡 한 덩어리는 따끈한 것이 정말로 맛있어 보였습니다. 집으로 가져와서 남편과 한입 먹으려다 어제 태현이가 생각나 잠시 기다렸다가 태현이와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크게 몇 조각 되게 손으로 잘라 비닐봉투에 싸 두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태현이가 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들어오길래 “손 씻고 오렴 쑥떡 먹자…. 태현아 내일이면 따끈한 가래떡 먹을 수 있어. 오늘 방앗간에 떡 맞추었단다.” “와∼. 우리 그럼 떡볶이도 해 먹어요.” “좋∼∼지.”

바로 그때 쑥떡을 손에 들고 먹고 있던 태현이가 갑자기 손으로 목을 잡고 숨을 쉬지 못하면서 쓰러지는 겁니다. 너무너무 놀라서 남편을 큰소리로 부르는 동시에 태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태현이 입에 가득 든 쑥떡을 손으로 빼내고 등을 두드려도 아이는 여전히 숨을 못 쉬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며 웃을 수 있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태현이 엄마와 아빠의 얼굴만 생각나는 겁니다. 병원까지 가다가는 아이가 어떻게 될 것 같아 우리 주님께 태현이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제 손을 아이의 입으로 깊숙이 넣고 목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목에 걸려 있는 쑥떡 한 덩어리를 끌어올리자 아이는 그제야 “휴, 죽을 뻔했네”라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태현이를 끌어안고 눈물범벅으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뛰어나온 남편도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고, 저는 한동안 놀란 가슴을 안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잘게 잘라 주는 버릇 생겨

그럼 태현이가 쑥떡을 안 먹었을까요? 아니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저는 가위를 들고 쑥떡을 잘게 잘라 접시에 담아 태현이와 남편과 늦게 하교한 아이들과 맛있게 먹었답니다. 태현이 쑥떡사건을 이야기하면서 큰 소리로 웃어가며 말입니다.

그 후에 저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무엇이든 가위로 잘게 잘라 접시에 담아 아이들에게 주는 습관을 저도 모르게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 태현이는 중학교 3학년 든든한 아들로 커 주었습니다. 오늘 태현이의 글을 보면서 녀석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오늘 오후 간식은 떡볶이를 해 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태현이 쑥떡사건을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아마도 오늘 떡볶이는 무척이나 맛있을 것 같습니다.

■ 김혜원 사모는

남편 배요섭 목사(전남 해남 땅끝마을 아름다운교회)만 보고 서울에서 땅끝마을 송호리로 시집왔다가 땅끝 아이들의 ‘대모’가 돼 버렸다. 교회가 운영하는 땅끝지역아동센터 아이들 50여명의 엄마로 오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푼다.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