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 파장] 담당 형사 심경 피력 “도가니 사건,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입력 2011-10-05 19:42
“세상의 모든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조사 당시 심경을 담은 글을 인터넷에 올려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광주 남부경찰서 형사과 과학수사팀 김광진(38·사진) 형사는 4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도가니 담당형사였다”며 “경찰관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사건을 접해 봤지만 이 사건은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김 형사는 이어 “수화통역사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운 점은 있었다”며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에서 전달되는 그들의 고통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달했다.
김 형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진술녹화실에서 한 피해 학생이 울면서 마치 몸부림치듯 여경에게 수화로 설명하는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던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며 “말을 못하니 전달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그렇게 격렬하게 수화를 한 것 아니겠나. 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 초월한 듯 무덤덤하게 진술하는 학생도 있었다”며 “‘그동안 얼마나 당했으면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화에서 담당형사(장 형사·엄효섭 분)가 학교 측과 유착을 맺고 사건을 외면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등 경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을 다시 한번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도가니’ 원작자 공지영씨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교육청과 시청의 미루기 행태는 취재했지만 경찰은 내가 만든 인물로 피해가 있으면 죄송하다”면서 “신고를 받고도 왜 4개월이나 수사를 시작하지 않았는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경찰도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형사는 “당시 첩보를 처음 접수한 형사가 4개월간 비밀리에 1차 조사를 벌였고 나는 2차 조사 때부터 참여했다”며 “학교 측에 숨겨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