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하드머니 VS 소프트머니 ‘돈의 전쟁’… 2012년 美대선 ‘풀뿌리 정치’ 시험대
입력 2011-10-05 21:36
미국의 정치자금은 소프트머니와 하드머니로 나뉜다. 하드머니는 정치인이 직접 받는 후원금이다. 기업·노동조합 등 이익단체의 후원이 엄격히 제한돼 개인이 내는 후원금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이익단체들은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해 직접 정치 광고를 할 수 있다. 시민단체를 내세워 정책을 비판하거나 지지하기도 한다. PAC나 시민단체의 자금은 규제가 느슨해서 소프트머니라 불린다.
하드머니는 일반 유권자 같은 풀뿌리 정치세력을, 소프트머니는 이익단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자금이라고 볼 수 있다.
2002년 선거법 개정으로 규제가 강화되기 전까지는 PAC도 정당에 무제한으로 후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 뒤 PAC의 정당후원 한도가 개인후원금 수준으로 제한됐고, 선거일 60일 전부터는 정책에 관한 찬반 광고도 하지 못하게 됐다.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광고도 금지됐다. 소프트머니의 역할이 제한되면서 하드머니의 중요성이 커졌다. 정치인에겐 하드머니가 사실상 유일한 자금조달 창구다. 풀뿌리 정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소프트머니의 규제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에서도 비주류였던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 것도 하드머니 모금에 성공하면서 상대 후보를 압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무브온’ ‘티파티’ 같은 풀뿌리 정치단체의 비중도 급속도로 커졌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도 하드머니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2002년 이후) 지금까지는 하드머니의 시대”라며 “유권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 모금에도 능하기 때문에 후원금을 많이 모으는 정치인이 정치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변수는 지난해 미 대법원이 지난해 PAC의 정치인 지지·비판 광고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점. 내년 선거에서 고삐가 풀린 소프트머니를 소액 다수의 하드머니를 내세운 풀뿌리 정치세력이 당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며 하드머니로 선거 비용을 조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인터넷 소셜미디어인 트위터에 “오늘 밤 자정이 넘기 전에 단돈 5달러만 후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은 3·4분기 모금 마감일이었다. 모금 실적에 따라 선거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감일까지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뉴욕 플러싱의 한인유권자센터(소장 김동찬)사무실에서도 시민의 정치가 살아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무실은 자원봉사 활동을 하러 온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플러싱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찾아내고 이를 지역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직접 정치인을 후원할 순 없지만, 이 단체의 평가가 곧바로 후원금 모금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이들의 활동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김동찬 소장은 “젊은이들의 활동은 봉사가 아니라 시민참여 정치의 일환”이라며 “이곳은 시민들이 느끼는 문제를 의제로 삼아 변화를 만들어 내는 풀뿌리 정치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뉴욕=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