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美 하원 15선 댄 버튼 의원 “단돈 몇십만원이라도 사적으로 쓰면 정계 퇴출”

입력 2011-10-05 17:58


미국 정치자금 제도의 특징은 투명하게 내역을 밝히기만 한다면 금액의 제한 없이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업·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선거운동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허용한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부담도 적지 않다.

워싱턴DC의 연방의원회관인 레이번 빌딩에서 만난 댄 버튼(72) 의원도 이 같은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버튼 의원은 “미국에서 정치를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디애나주에서 1983년 이후 28년 동안 15선을 기록한 버튼 의원은 하원 외교위원회 유럽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공화당 주류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기자가 미국의 정치자금 제도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버튼 의원은 TV 광고비용부터 지적했다. 미국 정치인들이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 바로 광고다.

“선거 시기가 되면 광고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내 지역구의 경우 TV 광고가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4∼5개 지역 방송국 채널의 프라임타임(시청률이 높은 시간)에 30초씩 광고를 하려면 한 번에 1만 달러(약 1200만원)가 들어간다. 선거 기간 동안 50만 달러(약 6억원) 이상 써야 한다.”

사실 미국에선 정치자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곳이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광고 외에는 거의 없다. 몇 십 만원 정도의 소액이라도 허투루 썼다가는 정계에서 은퇴해야 할 정도로 의회 윤리규정이 엄격하다<표 참조>. 미국 정치인들은 광고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그 다음으로 후원행사를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사실상 이 2가지가 정치자금 지출내역의 거의 전부다.

-광고에 쓰는 돈이 전체 정치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

“정치자금을 얼마나 모으느냐에 달렸다. 지난해 예비선거에서 나는 100만 달러(약 12억원) 이상 썼다. 5∼6명이 출마해 경쟁했는데 그중에는 TV와 라디오 광고에 60만 달러를 쓴 사람도 있다. 신문 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처음 의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20만 달러면 충분했다. 지금은 훨씬 늘어났다.”

30년간 선거비용이 5배가 늘어난 셈이다. 미국은 인구 70만명을 기준으로 지역구를 구분한다. 10만∼30만명 기준인 한국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게다가 주거지역이 넓게 분포해 후보자가 일일이 유권자를 만나러 다니는 한국식 선거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선거운동 기간은 얼마나 되나.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90일이지만, 실제로는 (하원의원 임기인) 2년 내내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11월 선거를 위해 지금부터 모금하고 있지 않은가. 선거운동 기간을 줄여야 한다. 내 생각엔 아마도 60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미국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의회가 열리기 때문에 현역 의원은 거의 주말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도 광고 의존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정치 광고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평상시에도 정책 관련 광고를 할 수 있다. 선거 기간과 정치 광고 횟수를 엄격히 제한한 한국과는 반대다.

우리의 경우 내년 총선거 선거운동 기간은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13일간이고, 대통령선거의 운동 기간은 11월 27일부터 12월 18일까지 22일이다. TV와 라디오 광고는 각 15회(대선은 30회)까지만 할 수 있다. 신문은 20회(대선 70회)다.

-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있나?

“정치인들도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TV 광고 같은 것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특히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로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미 5000만 달러(약 600억원)를 쓴 단체도 있다. 연방 의원의 연봉이 17만 달러(약 2억원)인데, 이 자리를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에서 소셜미디어로 후원금을 모금해 돌풍을 일으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서 각광 받고 있다. 이번에도 수백만 달러를 소셜미디어에서 모금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 같은 대부분의 정치인은 아직 뉴욕 플로리다 시카고 등 미국 각지에서 모금행사를 여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내 지역구는 인디애나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 중 하나지만 거기서만 자금을 모아선 돈을 충당하기 힘들다. 선거에 한 번 이기면 곧바로 다음 선거를 위해 모금에 들어가야 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워싱턴DC=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