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88억弗감소… 정부 개입에 축나는 ‘곳간’
입력 2011-10-05 21:36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불린 3000억 달러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특히 외환 감소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여서 최근의 미국·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가 컸음을 보여줬다.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 붕괴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는 가운데 정부의 잇단 개입이 오히려 환율 급등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년10개월 만에 최대 감소=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033억8000만 달러로 전월 말보다 88억1000만 달러 감소했다고 5일 밝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8년 11월 전달보다 117억5000만 달러 급감한 이래 2년10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이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어든 데 대해 “유로화, 파운드화 등이 이 기간 큰 폭의 약세를 기록하면서 이들 통화표시 자산의 미 달러화 환산액이 크게 줄어든 데 주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달 달러 대비 유로화는 6.8%, 파운드화는 4.1%, 엔화는 0.6%, 호주달러는 9.8%, 캐나다달러는 6.9% 절하됐다. 하지만 주요 통화 절하율만으로는 지난달 외환보유액의 급락이 모두 설명되진 않는다. 결국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따른 영향이 컸을 것으로 금융권은 파악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 역시 “외자 운영수익, 스무딩 오퍼레이션, 국제기구 간 거래 등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혀 당국의 일부 개입 움직임을 완곡하게 인정했다.
◇정부 개입이 환율 급등 자초할 수도=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의 조재성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펴낸 신간 ‘환율의 역습’에서 “당국은 외환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개입이 지나치게 빈번하게 이뤄지면 오히려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7∼8월 15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소진하며 환율 방어에 전력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같은 해 11월 1500원 선까지 돌파하는 등 급등했다.
조 연구위원은 “당국이 매일같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고 이것이 언론에서 이슈로 부각되면 오히려 당국의 외환시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지고 시장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국은 외환시장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처지를 십분 고려해 외환시장 개입에 더욱 신중을 기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월 말 1066.8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부터 급등해 4일 장중 12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3000억 달러 무너질까=미국·유럽 재정위기의 장기화 전망과 수출 둔화세로 인해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많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책임연구원은 “리먼 사태 당시와 비교해 달러 강세가 10% 정도 더 상승할 수도 있는 데다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둔화돼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를 하회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연구위원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예정된 만큼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등 여러 카드가 아직 남아 있다”면서 “정부는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막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