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도둑에게 지갑마저 기꺼이 넘기다
입력 2011-10-05 17:58
이집트 사막에 살던 어떤 기독교인이 외출했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 부근에 다다른 그 자는 어떤 자가 낯익은 물건을 나르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보니 그 물건은 자기의 집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가 외출한 사이를 틈타 도둑이 물건을 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도둑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도둑은 “보다시피 물건을 나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도둑에게 “도와 드릴까요”라고 했고 도둑은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도둑을 도와 자신의 물건을 함께 날라 주었다. 도둑이 떠난 다음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 돗자리 밑에 숨겨져 있던 지갑을 발견했다. 그는 뛰쳐나가 도둑을 뒤따라가서, 빠진 물건이 있으니 마저 가져가라고 하면서 지갑을 전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아르세니오스라는 유명한 사막 기독교인에 얽힌 일화이다. 황제의 가정교사였던 아르세니오스는 황실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와서 여생을 보냈다. 이집트의 사막에서 아르세니오스는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고 명성이 퍼져 나갔다. 아르세니오스가 도둑에게 지갑마저 기꺼이 넘기고 난 다음 읊조린 성경구절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은즉 적신으로 돌아갈지라”는 욥의 말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르세니오스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화인 것 같다.
도둑을 도둑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방식일 것이다. 나라는 놈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면 마음에 두고두고 꺼림칙하고, 비겁하거나 억울한 생각도 들어 가능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어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보통 소유나 분배, 혹은 권리와 관계있는 것이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도 비슷하려나.
그런데 사막 기독교인들의 영성이란 도둑을 도둑이라고 정죄하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도와주는 것이었다. 사막 기독교인들이 잘잘못을 초월하는 삶을 고상한 것으로 여겼기에 이 시대를 연구하는 자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천사 같은 삶’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에덴의 동쪽에 터를 굳건히 한 가인의 후손인 우리로서는 옳고 그름을 넘어선 천사 같은 삶이 너무나 요원한 것이지만, 바로 그 요원함 때문에 천사 같은 삶을 더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내 것을 훔쳐가는 자를 도와주고 더 보태 주는 경지에 이르는 게, 나라는 자에게 어찌 가능할 것인가 말이다.
■ 남성현 교수는 고대 기독교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초대교회사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영신학대학교 교수와 몬트리올 대학교 초청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