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두 남자를 바꾸다
입력 2011-10-05 17:44
최인창·고정희 언니 부부 & 박강성·고남희 동생 부부
최인창(50). 그는 목사이자 선교사다. 중앙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무슬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2년여 동안 현지에서 고군분투하고서 일시 귀국한 그는 지금 영과 육의 힘을 충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별로 길지 않다. 한 여자의 인도로 1990년대 중반 난생 처음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 일약 하나님의 일꾼으로 탈바꿈했다. 그 여자, 한 남자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꾼 영원한 내조자 고정희(49)씨다.
박강성(50). 그는 대중가수이자 찬양사역자다. 국내 대표적인 라이브 가수로 활동하면서 하나님 찬양에도 힘을 쏟고 있다. 처절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간증을 곁들여 펼치는 그의 무대는 교회 안팎을 넘나들면서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 역시 신앙 경력으로 치면 일천하다. 그도 한 여자의 기도와 권유로 하나님을 만나 뜨거운 신앙인으로 급성장했다. 그 여자, 열렬한 팬이었다가 인생의 동반자가 된 고남희(46)씨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을 잡을 것이다. 두 여자 덕분에 변화된 두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두 남자를 변화시킨 두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맞다. 두 남자와 두 여자 그리고 두 쌍 부부의 이야기다. 자매인 두 여자를 중심으로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이야기다. 부부끼리 따로, 그리고 두 쌍을 함께 만났다.
운명적인 부부
최인창-고정희 부부는 서로를 운명이라고 했다. 둘 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만난지 불과 4개월여 만에 결혼한 것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남부럽지 않게 잘나가던 남녀가 많은 걸 포기하고 만났으니 대단한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혼 전 남자는 사업가였다. 서울 강남에서 큰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패션 관련 사업을 했다. 강남 대형 아파트, 고급 외제차 등으로 대변되는 호화 생활을 했다. 세상의 온갖 재미를 즐기고 살았다.
그럼 여자는? 남자 못지않게 잘나갔다. 굴지의 화장품 회사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이사까지 올라간 입지전을 이루며 연 4억원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렸다. 커리어우먼으로서 뭇 여성들의 선망을 받았다.
둘은 1995년 초 만났다. 남자가 여자에게 교제를 제의했다. 그 이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사업상이었다. 하지만 둘의 교제가 이뤄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자가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만날 수 없다”것이었다.
근데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를 찾았다. 여자로서는 의외였다. 어느 정도 밀고 당기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얼싸 좋다’고 달려드니 말이다. 하지만 남자에겐 그럴 이유가 있었다. 뭔가 삶의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항상 뻥 뚫린 듯한 가슴을 안고 살았다. 그런 차에 나온 여자의 조건은 오히려 반가웠다.
둘은 함께 서울 안암동 영암교회를 출석했다. 남자의 열정이 대단했다. 열심히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여했다. 교회 봉사에도 앞장섰다. 여자의 마음이 움직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성경책 한 권을 예쁘게 포장해 선물했다. 남자의 프러포즈를 수용했다.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남자의 사업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럼에도 마음은 평온했다. 스스로도 이상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 청평의 한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마음 깊이 느껴졌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성령체험인가 했다.
남자는 예수전도단(YWAM)의 중앙아시아 비전트립에 참가했다. 한 나라가 강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곳 불쌍한 영혼들을 향한 가슴속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내가 선교해야 할 곳이구나.’ 돌아오자마자 목사와 교우들 앞에서 선교사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주위에서 신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했다. 앞뒤 잴 필요도 없었다. 서울장신대학교에 들어갔다. 미래의 선교사를 꿈꾸며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선교지로 훌쩍 떠났다.
필연적인 부부
박강성-고남희 부부는 서로를 필연이라고 했다. 가수와 팬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처럼 진행됐다는 것이다.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절묘하게 헤아렸고, 서로가 각자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켰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해줬다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수순에 따른 필연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남자는 82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가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뜨지’ 못했다. 탁월한 가창력에 대한 찬사가 대단했지만 도통 대중적 인기로 연결되지 않았다.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까마득한 과거까지 떠올랐다. 주위로부터 제대로 사랑 한 번 못 받고 자란 그였다. 저주 받은 인생인가 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알코올에 의지했다. 가슴속 슬픔, 외로움, 아픔, 절망감 등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남자의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여자가 있었다. 남자의 노래가 너무 좋아 그의 무대를 쫓아다니다 그 모습을 보게 됐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곤 남자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앙밖에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남자에게 하나님을 제시했다. 예상대로 남자는 반발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전했다.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남자에게 여자는 물었다. “박강성씨, 행복하세요?” 무덤덤한 남자를 향해 한마디를 더 했다. “하나님을 알면 행복해진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남자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껏 살면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자기와는 워낙 무관한 것이었다. 한데 하나님이 행복하게 해준다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교회에 가봤다. 역시 자기와는 딴 세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일 금식을 작정하고 경기도 청평의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날 남자의 내면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느껴졌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널 사랑한다.” 목놓아 울었다. 30년 넘게 차곡차곡 쟁여놓은 설움과 아픔을 한번에 털어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남자의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98년 자신에게 하나님을 알려준 여자와 결혼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생활은 오로지 하나님 중심이다.
두 부부가 사는 법
고정희-남희 자매는 닮았다.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다. 살아온 길이 닮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닮았다. 생각이 닮았고 꿈이 닮았다. 각자 남편을 변화시킨 것만 해도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무슨 연유라도 있을 것 같은데 자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만 했다.
두 부부는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의 한 아파트에 나란히 붙어서 산다. 동서지간에 동갑인 남편들은 자매의 서열에 따라 형제로 산다. 웬만한 일상은 같이 한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같이 지낸다. 신앙적인 화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전 얼굴 한번 붉힌 일이 없다. 삶의 노선이 같고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주님을 향한 소망과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녀1남과 2남의 자녀들 이름만 해도 그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최성령과 영광 남매, 박요셉과 사무엘 형제.
두 부부는 꿈의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서울 광장동의 중국 음식점 ‘박강성의 리하’다. 이 음식점을 함께 운영하면서 꿈을 키우고 있다. 최 선교사의 사역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곳에선 매월 셋째 주 월요일 저녁 ‘박강성의 미니콘서트’가 열린다. 최근엔 최 선교사가 목요성경공부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자매는 대전에서 태어나 지독한 샤머니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부적, 굿, 정화수, 불공 등에 익숙했다. 하지만 80년대 초반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새로 이사한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안암동 영암교회에 다니면서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우상 숭배의 행태를 모두 버렸다. 자매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로 나갔다. 나중에 오빠와 아버지까지 전도돼 일약 기독교 집안이 됐다. 자매는 “우리는 그때 빠르게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특이하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치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신앙은 도대체 무엇일까? 언니 부부가 먼저 말한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즐겁게 하고, 진리의 길이라면 기꺼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동생 부부가 말한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것이라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부부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모습이 새로이 정리됐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