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롤프 힐레 WEA 에큐메니컬 위원장과 박성원 WCC 중앙위원
입력 2011-10-05 19:40
[미션라이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가 6일 출범식을 갖고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2009년 8월 한국교회가 WCC 총회를 유치하고 2년 만에 조직한 이 기구는 2013년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WCC 회원교단은 물론 비회원교단의 참여를 독려해 역량을 결집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한국준비위원회가 순탄한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예장 합동과 고신 등 보수 교단은 교단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WCC의 신학적 문제를 단단히 따지겠다는 분위기다.
지난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WCC 총회 준비위원회 모임에서 롤프 힐레(64)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에큐메니컬위원회 위원장과 박성원 WCC 중앙위원(영남신대 석좌교수)을 만나 보수교단이 우려하는 WCC의 신학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튀빙겐대 신학대 학장을 역임한 힐레 위원장은 1986년부터 2008년까지 WEA신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이 기구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 왔다. 참고로 WEA는 한국의 보수교단이 WCC 총회에 자극 받고 2014년 한국총회를 추진하는 세계교회 기구이기 때문에 그의 WCC 총회 준비위원회 참석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은 상호 보완적이며, 세계적으로 양 진영이 서로의 합치점을 찾아가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 있다”면서 “전혀 새로운 운동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과거의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되지 말고 대화에 나서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WCC의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
-복음주의 교단의 집합체인 WEA 소속 인사가 WCC 모임에 참석했다는 게 한국 성도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것 같다.
△힐레 목사=WEA는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 보수적인 전통교회 교인 중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개인회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다. 반면 WCC는 교파와 교단이 참여한다. 내가 소속된 교단은 WCC 회원교단이며, 개인적으론 WEA에 참여하고 있다. 나처럼 교단적으론 WCC에 가입돼 있고 개인적으로 WEA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생소하겠지만 세계적으론 이런 게 보편화 돼 있다. 이번엔 WEA 에큐메니컬 위원회를 대표해 WCC 총회 준비위원회에 동참하게 됐는데 총회 주제연구소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박 목사=1948년 창설된 WCC는 초창기 로마 가톨릭과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냉전구조가 해체된 다음 복음주의진영, 특히 오순절교단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WCC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교회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비전, 관계증진을 위해 복음주의 진영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했다. 이런 노력과 지속적인 행보 때문에 WEA나 비회원교회가 이번 총회준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지금 복음주의 진영으로 대표되는 로잔언약 그룹과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대표되는 WCC 그룹은 신학적으로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며 근접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준비위원회도 조직의 50%를 오순절교회 인사와 복음주의권 인사를 배정했다.
-하지만 세계교회는 여전히 진보와 보수,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으로 나눠져 있지 않나.
△힐레 목사=한국교회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나뉘어 딴 길을 걷게 된 것도 세계교회의 흐름과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반드시 이 부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 WCC가 1948년 창설됐을 때만해도 복음주의자들은 많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남부 아프리카의 독립투쟁을 지원하게 됐고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교회가 헌금을 폭력적인 활동에 사용한다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교회의 복음전도 사명은 뒷전이고 사회 운동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생긴 것이다. 그 결과 빌리 그래함이라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리더가 74년 로잔에 2000여명의 대표들을 초청해 시작한 게 로잔운동이다. 그는 기조 강연에서 WCC의 신학운동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 이후로 양 진영은 서로 갈등하게 됐다.
△박 목사=WCC가 복음의 사회적 증언에 열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WCC에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있어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과 진정한 교회됨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종교 간 대화도 61년 뉴델리에서 열린 WCC 대회를 열면서 불교 힌두교 유대교 등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기 시작됐고 70년대로 넘어오면서 종교간 대화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 부각된 게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 것인가’였다. WCC는 여기에 따라 원칙을 만드는 등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는데 늘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렇다면 요즘 세계교회 상황은 어떤가.
△힐레 목사=복음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다문화적 환경 속에서 복음을 전할수록 모든 기독교인은 종교의 자유와 인권, 국가와 민족간 협력, 빈곤탈출 등에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과제 앞에 놓였다. 그래서 에큐메니컬 인사들처럼 복음주의자들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만인의 종교자유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해 크리스천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다. 그렇기에 대화가 전도를 대신할 수 없고 전도가 대화를 대신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와있다. 이 둘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박 목사=9·11사태 이후 양 진영은 종교간 협력이 인류 공동의 평화와 생명, 인간이라는 문명사회를 보존하기 위해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발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큐메니컬 인사들은 복음주의자들로부터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고, 반대로 복음주의자들은 로잔 언약에서 볼 수 있듯 복음을 전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양 진영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앞에 복음주의자들은 카이로스 문서라는 것을 작성해서 차별정책이 철저하게 반복음적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회 정의를 위해 갈등을 타파하기 위해서 복음주의가 동참한 것이다.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도 종교간 대화를 위해선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양 진영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컬 진영이 확연히 갈라져 있다.
△힐레 목사=70년대와 달리 오늘날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는 양극단을 달리던 구도에서 상당히 다른 상황에 와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에반젤리컬화 되고, 에반젤리컬이 에큐메니컬화 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상당한 방향 전환이 있었고 배움으로 서로 많이 융합이 된 상태다. 과거의 에큐메니컬 운동과 전혀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박 목사=에큐메니컬 운동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대화와 협력, 나눔을 통해 함께 동역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동참한다는 것이 근본정신이다. 복음주의자들도 개인의 헌신을 강조하면서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수 교단조차 점점 사회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다가서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98년 하라레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모토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결국 인간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즉 주님의 주도적 변혁에 동참하자고 선포한 것이다. 2006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WCC총회에선 주제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을 변화 시키소서’였다. 결국 인간이 무엇을 변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WCC가 상당히 복음주의권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2013년 WCC 총회와 2014년 WEA 총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박 목사=부산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생명, 정의, 평화 모두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주 복음적인 기도문의 주제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이다. 복음을 넓게 보려는 양쪽의 시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진짜 복음주의적이라면 진실로 에큐메니컬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두 개는 같은 것이다. 특히 2013년 WCC 총회와 2014년 WEA 총회는 한국교회에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서로 대치점이 아니라 융합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휼륭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공헌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데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힐레 목사=각자 총회가 다른 역사와 회원을 지닌 것은 맞다.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와 성경을 바라보며 복음전도와 사회선교,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이라는 성경적 균형을 찾아갈 때 복음주의 운동, 에큐메니컬 운동 모두 서로 완성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WCC 총회에 대해 한국교회가 안심해도 되나.
△힐레 목사=WEA 입장에서 WCC 헌장에 나오는 신앙고백을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WCC가 스스로 천명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던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열린 마음으로 환영하고 기도로 동역하면 된다. WCC 총회에는 총대나 참관인으로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많다.
△박 목사=에큐메니컬 운동의 근본정신이 성경에 있다는 것은 WCC 헌장 제1장 1조에 들어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WEA가 더 사회적이고 WCC가 더 복음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WCC가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다원주의라고 지적하는 데 절대 그렇지 않다. WCC는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간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지만 심지어 성례전 하나도 제대로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다원주의인가. 기독교가 생태 전쟁 평화 등 인류 공동의 문제를 놓고 타종교와 공동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 다원주의가 아니다. 21세기 기독교는 교회간의 일치는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도 힘을 모아야 한다. 부산=글·사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