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막았더니… 돈, 中企 아닌 대기업에 쏠렸다

입력 2011-10-04 21:46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가 조금씩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가계대출을 막았더니 은행권의 대출이 우량 대기업으로 쏠리고 있다. 6월 말 가계대출 연착륙대책 시행 이후 ‘반짝’ 중소기업으로 몰리던 자금이 일제히 대기업으로 유턴하고 있는 것. 가계대출을 조이면 은행 자금이 돈 사정이 궁한 중소기업으로 갈 것으로 기대한 금융당국은 당황하고 있다.

선진국발 경제위기에 따른 은행권의 리스크관리로 해석되지만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8개월 만에 가계대출 감소=4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29일 기준 276조924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보다 910억원 감소한 것으로 지난 1월 4740억원 감소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개인 신용대출이 2008년 12월 계수 집계 이후 최대 폭인 1조8032억원이나 급감한 57조3440억원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강도 높게 가계대출을 줄이도록 지도하면서 저신용등급 서민들에 대한 대출도 다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94조1193억원으로 1905억원(0.1%) 증가했다. 월중 증가액은 6월 1조3721억원(0.7%), 7월 9722억원(0.5%), 8월 7796억원(0.4%) 등으로 꾸준히 줄어들어 지난해 8월 이후 1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규 분양이 줄어든 여파로 아파트 집단대출도 631억원 줄어든 67조8008억원을 기록, 세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전세자금 대출도 전월보다 1729억원(4.6%) 증가한 3조9060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가 둔화됐다. 전세자금 대출 증가율은 7월 9.0%에서 8월 7.9% 등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가 지난달 평균 연 5.58%를 기록, 0.12% 포인트 오른 점도 가계대출 축소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기업대출 ‘맘대로 안 되네’=일단 가계대출이 줄면서 기업대출이 증가하긴 했지만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이 공급됐다. 가계대출 규제로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던 금융당국의 계획도 틀어지게 됐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 초기에는 중소기업에 자금이 공급됐지만 선진국발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일제히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섰다”면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도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매우 다행스럽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금 조달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은 신용도가 우수한 대기업에 대한 영업을 대폭 강화했다. 대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8월 2조1145억원 증가한 뒤 지난달에도 2조2519억원이나 증가해 두 달 연속 2조원대 증가세를 기록했다. 올 하반기 석 달간 5조5124억원이나 증가했다. 대기업대출 금리도 0.12% 포인트 하락한 연 5.55%를 기록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3252억원 줄어든 208조1169억원을 기록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