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이혼 위기 가정에 생긴 어떤 일…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10월 13일 개봉
입력 2011-10-04 17:57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3관왕(최고작품상인 황금곰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감독 아스가르 파르허디)가 오는 13일 국내 개봉된다.
지난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았고, 4일 폐막한 서울기독교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는 독특하고 흥미롭다. 이란 중산층 가정 부부의 갈등과 별거, 이혼으로 가는 과정에는 현대 이란인들의 생각과 문화, 규범이 잘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목받은 더 큰 이유는 치밀한 스토리에 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관객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궁금증과 긴장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는 이혼 법정에서 한 부부가 판사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중산층 워킹맘인 씨민(레일라 하타미)과 그의 남편 나데르(페이만 모아디)는 이민 문제로 갈등 겪다 이곳까지 왔다. 씨민은 열한 살이 된 딸 테르메(사리나 파르허디)의 장래를 생각해 현실적 제약이 많은 이란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나데르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이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둘의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판사는 딸의 의견까지 들어봐야 한다며 선고 기일을 연기한다.
결국 씨민은 짐을 싸들고 친정으로 들어가는 별거를 선택하고, 나데르는 출근해 있는 동안 아버지를 보살피고 집안일을 도울 가정부 라지에(사레 바랏)를 고용한다. 신앙심이 깊은 라지에는 임신한 몸이지만 빚더미에 올라앉은 남편 호잣(샤합 호세이니)을 돕기 위해 남편 몰래 일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날 나데르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라지에는 없고, 아버지는 침대에 팔이 묶인 채 널브러져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데르는 나중에 돌아온 라지에를 문 밖으로 밀쳐 쫓아낸다. 그런데 얼마 뒤 라지에가 유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나데르는 태아를 죽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영화는 여기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나데르가 라지에의 유산에 책임이 있는지를 놓고 당사자는 물론 주위 인물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막바지에 라지에 유산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이 영화의 목적은 누가 유산에 책임이 있는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유산 이후 나데르와 씨민, 라지에와 호잣, 그리고 테르메가 어떻게 반응하며 자기를 합리화하고, 어떤 내적 갈등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종교적·도덕적 신념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들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스가르 파르허디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각자의 선이 갖고 있는 비전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부모가 법정 밖에서 기다리는 사이 판사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던 테르메. 그 아이는 과연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따라가겠다고 했을까.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