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당의 근간 위협하는 ‘시민후보’ 바람
입력 2011-10-04 17:34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어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대표에 취임한 지 1년 만이다.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시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패배함에 따라 민주당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못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 대표의 사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을 등에 업은 소위 ‘시민후보’ 파워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새삼 실감케 한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갖고 있는 조직력은 ‘제3의 대안세력’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표참여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도 이탈표가 나왔다. 민주당은 박 변호사가 입당해주기를 바라는 초라한 처지로 전락했고, 박 변호사는 6, 7일로 예정된 서울시장 후보등록 때까지 민주당 입당을 고민해보겠다는 유보적 입장만 표시하고 있다.
박 변호사의 승리로 정치질서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기존의 양당 대결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 오는 26일의 서울시장 선거도 한나라당과 시민후보 양자 싸움으로 짜여지게 됐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박 변호사 간의 본선 결과를 예단할 순 없지만 시민후보 바람이 거센 현재의 분위기로 볼 때 박 변호사가 다소 유리한 국면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무상급식 서울주민 투표에서 한나라당 소속의 오세훈 전 시장이 패한 점도 한나라당 부담이다. 박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한나라당 역시 작금의 민주당처럼 시민후보에 패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정당정치의 위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유권자들이 시민후보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정당들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집권 이후 친이·친박 싸움질에 몰두해왔고, 민주당은 취업난 등 민생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들에게 구각(舊殼)을 벗어던지라고 큰소리치는 이유다. 총선과 대선이 내년에 치러진다.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