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서민정] 자기 계발서의 함정
입력 2011-10-04 17:36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여성분이 열심히 책을 읽고 계셨다. 슬쩍 눈길을 주었더니 읽는 부분의 목차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나를 즉시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방법이 있나? 아니 그보다는 저런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 책은 1937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일컬어지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책을 읽던 분께 직업을 여쭈었더니 보험판매를 하고 있고 일에 도움이 될까 하여 목차 보고 골라가면서 틈틈이 읽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카네기 인간관계론’과 같은 자기계발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 유의 책을 읽지 않아도 이 경쟁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책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기에 현대 사회에 들어와 주목받기 시작한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기계발서의 원조 격으로 일컬어지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근대인 1859년에 쓰였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의 규칙을 만들어냈다고도 평가되는데, ‘자조론’을 포함해 오늘날 출간되는 자기계발서는 누구를 독자로 삼든, 어떤 내용을 다루든, 변하지 않는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인간을, 혹은 삶을 성공과 실패로만 나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든 반드시 성패를 가른다. 둘째, 그러한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능력과 태도에 따른 문제로만 규정한다. 이 두 원칙 때문에 나는 자기계발서에 손을 안 댄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한 책을 찾고 싶을 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가 부하직원이 됐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상사에게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요구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 이럴 때 명쾌한 답을 알지 못하면,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으면 해답이 담긴 책이라도 찾아 기대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게 된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떨 때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문제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나 혼자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어떤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될 경우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오로지 ‘당신 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들춰보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대책 없는 자기반성과 가혹한 결심만 강요받는 듯하다.
그럼 나만 읽지 않으면 되는 문제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따져보자. 왜 많은 이들이 개인의 성공에만 집중하고 있는지, 사회전체가 성공에 이르는 길에는 관심을 안 가져도 되는 건지. 손에 들려진 자기계발서를 내려 놓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자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서민정 문화예술교육진흥원 대외협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