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읽기] 유럽 ‘준비된 디폴트’로 혼란 최소화 해야

입력 2011-10-04 18:02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이 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고 또 기대를 가져보지만 다시 실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시장은 악재에 대한 충격을 흡수하고 추스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노출된 악재가 자기증식과정을 거쳐 더욱 확대되고 있다. 누구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해결책을 실행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은 유동성의 부족이 아닌 지급능력의 상실 또는 거부에 있다. 따라서 지금 제시되고 있는 해결방안들은 본질을 벗어난 미봉책의 반복에 불과해 보인다. 투자가들은 이제 그리스의 디폴트라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것이다.

그린스펀으로부터 출발한 월가의 탐욕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민간부채가 정부부채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실패를 정부의 실패로 치환한 모습이 현재 진행되는 재정위기의 본질이다. 자본주의는 효율의 문제는 다루지만 분배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월가에서의 시위는 금융시스템 유지에 더 많은 세금은 내지 않겠다는 의사 표출이다.

유로라는 단일 통화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독일은 유로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게으른 베짱이를 근면한 개미가 왜 부양해야 하느냐고 독일 국민은 주장한다. 이는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는 뜻도 된다.

그리스의 디폴트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된다면 금융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준비되지 않은 디폴트는 모두가 바라지 않는 선택이다. 준비된 디폴트는 당장은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올바른 처방이다. 그리스를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은 유로의 약세를 방치하는 것이고, 더 큰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 강세로의 반전은 유동성파티의 종말, 이머징마켓의 급격한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4분기가 시작되는 이달부터는 유럽 위기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유동성지원이라는 미봉책에 대한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당분간 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유럽이 그리스에 대해 준비된 디폴트를 준비하는 동안 투자가들은 변동성에 대한 방화벽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적절한 투자비중을 점검하고 투자기간과 리스크에 대한 내성을 갖춰야 할 시기다.

채승배 HR 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