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년간 급속 성장”-“성급한 상업화 경계해야”… 줄기세포 ‘실용화’ 전문가 반응
입력 2011-10-04 21:33
정부가 내년에 줄기세포 연구 활성화와 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 601억원보다 67% 늘어난 1004억원의 예산을 배정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줄기세포 원천기술 개발뿐 아니라 임상시험 연구 지원확대 등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제의 실용화를 앞당기겠다는 것이 이번 지원책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한동안 침체됐던 줄기세포 연구가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오기업들은 줄기세포 치료제의 신속한 제품화를 위해 인허가 조건 간소화 등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조만간 줄기세포 치료제 규제 완화 등을 포함한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로 원천기술 개발투자가 아닌 투기를 먼저 불러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른 상업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차병원그룹 차바이오앤디오스텍 정형민 대표와 가톨릭의대 기능성세포치료센터 오일환 교수를 만나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지원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을 들어봤다.
차바이오 정형민 대표… 늦은감 있지만 “환영”
기세포 치료제로 대표되는 재생의학 기술은 5년 안에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는 신의료기술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거의 모든 선진국이 전폭적인 지원과 규제완화를 통한 조속한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줄기세포 산업육성 지원 조치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단히 고무적이다.”
차병원그룹 차바이오앤디오스텍 정형민(차의과학대 교수) 대표는 4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이고 실패 위험이 높아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올해 7월 에프씨파미셀이 급성심근경색증 치료제 ‘하티셀그램-AMI’의 시판 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세계 최초로 받았다. 메디포스트도 최근 관절연골 재생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의 제조·판매에 관한 품목 허가를 식약청에 신청했다. 이 밖에 상업화를 목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는 16개나 된다.
반면 배아 줄기세포 치료제는 올해 4월 첫 임상시험 승인이 났다. 차바이오앤디오텍이 미국 ACT사와 공동으로 인간배아 줄기세포에서 분화·유도된 망막색소상피세포(RPE) 치료제를 개발, 희귀·난치성 실명 질환인 스타가르트병(3명)과 노인성 황반변성증(12명)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 측은 올해 안에 두 질환에 대한 동시 1·2상 임상시험에 들어가 2012년 말 또는 2013년 1분기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배아 줄기세포는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비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개발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연구비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업계와 연구자들은 줄기세포의 조기 실용화를 위해 현재 의사 책임 아래 이뤄지는 연구자 임상시험의 연구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 대표는 “식약청 허가를 받은 세포치료제의 경우 전임상(동물실험)과 상업화 임상시험(1·2·3상) 가운데 1·2상 시험에 대해 국가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3상 시험 비용은 기업체가 부담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실용화 촉진을 위해 허가·심사 규정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포치료제는 약사법상 의약품에 해당돼 일반 신약처럼 전임상과 상업화 임상 1·2·3상을 모두 통과해야 제품 제조·판매를 위한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일반 신약의 경우 개발에 1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희귀·난치성 질환자를 위한 세포치료제의 경우 시급성 등을 이유로 인허가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 대표는 “연구자 임상을 통해 환자에 대한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경우 상업화 임상시험을 할 때 임상 1상을 면제하거나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의 경우 임상 1·2상 종료 후 임상 3상을 수행하는 조건으로 품목 허가를 내주는 등의 규제 완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하지만 “자가 줄기세포의 독성시험 면제는 허락돼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선 자기 몸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 등이 없으므로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시험을 생략하고 바로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는 “자가 줄기세포도 일단 몸에서 채취한 뒤 외부에서 배양·증식 과정을 거치므로 감염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톨릭 의대 오일환 교수… 기술검증 덜돼 “우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입증된 줄기세포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유효성은 물론 안전성이 입증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술력 확보에 더 치중해야 할 때다.”
가톨릭의대 오일환 교수는 4일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개발(R&D) 활성화 및 산업 경쟁력 확보 방안을 환영하면서도 “너무 상업화에만 매몰되선 안 된다”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가 산업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선 성급한 성과보다는 유효성과 안전성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특히 일부 바이오업계가 호재성 공시나 기획된 홍보 등으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그는 급성심근경색 치료용 성체 줄기세포 치료제 ‘하티셀그램-AMI’가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 시판 허가를 받은 뒤 벌어진 상황을 예로 들었다. 오 교수는 “당시 줄기세포 관련 주가가 일제히 치솟았다. 일각에서 투기 붐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한 바이오기업이 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받지 않고 환자에게 불법 시술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처리가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화 촉진 계획이 발표된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한국의 엄격한 인허가 제도가 상용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세계 각국 임상시험 계획을 등록·관리하는 ‘클리니컬트라이얼스’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업화가 임박한 2상과 3상 임상시험이 미국 다음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한국은 유효성에 대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조건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진입해 어떤 효과를 판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하지만 국제적 기준을 무시하고 완화해 주는 것은 우리가 개발한 줄기세포 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현재 2∼3%의 치료 효과밖에 못 거두는 줄기세포 연구의 돌파구를 열 새로운 원천기술 개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줄기세포 선진국이라지만 사실은 착시 현상이 있다. 연구논문이나 기술경쟁력 등으로 볼 때 세계 7∼8위 수준”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현재 줄기세포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돌파구로 ‘줄기세포의 생체 내 미세 환경 조절 기술’과 ‘역분화 줄기세포(iPS) 기술’을 꼽았다. 전자는 줄기세포가 몸속에서 잘 증식해 재생 능력을 발휘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그는 “많은 연구자가 무조건 줄기세포를 만들어 몸속에 집어넣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어 치료효과 향상에 한계가 있다”면서 “줄기세포가 생체 안에서 최대한 재생할 환경을 만들어주면 치료효과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팀은 최근 몸속에서 줄기세포의 재생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기세포 둥지(niche)’를 발견했다.
역분화 줄기세포 기술은 일반 체세포에 역분화(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같은 개념) 조절 유전자를 주입해 배아 줄기세포 같은 만능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배아가 파괴되거나 난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 사회·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는 신기술이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