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영적 배움터,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만나기… ‘세상의 모든 기도’
입력 2011-10-04 17:45
세상의 모든 기도/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지음/송경용 진영종 옮김/함께읽는책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볍게 읽다가 깊이 빨려드는 책이 있다. ‘An Altar in the world’란 원제의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원제를 직역하면 ‘세상의 제단’,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제단이다’라고 할 수 있다.
성공회 신부인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보내는 일상과 성경적 사실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이 세상이야말로 거대한 영적 배움터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저자 특유의 글쓰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는 동시에 교회 너머의 세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는 교회 내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더욱 절실히 터득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집필 의도다. 책을 읽다보면 “전 세계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에 동감하게 된다.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제단(altar)을 알아보면 좋겠다. 사람들이 만나는 평범한 곳, ‘더 많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말이다.” 이 구절도 눈길이 간다. “명상과 순례, 단식, 기도와 같은 연습은 세상의 모든 종교들 안에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목욕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너무 평범해 이름조차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종교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연습은 생기를 잃어가는 종교들을 구할 것이다.”
저자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신부는 1995년 미국 베일러 대학이 선정한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 12인에 든 인물이다. 어느 날 한 교회로부터 설교 의뢰가 왔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될까요?” 대답은 간단했다. “지금 당신의 인생을 구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그때 깨달았다. 설교자로서 자신이 강단 위에서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역사와 적합한 신학적 용어를 써 가며 모든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신앙인으로 자신의 인생이 무엇에 좌우되었는지를 말하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서 신성(神性)을 발견하기 위한 12가지의 연습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로 깨어나는 연습’ ‘길을 잃는 연습’ ‘낯선 이들과 만나는 연습’ 등 12이야기마다 소제목이 달려 있다. 각 이야기들이 탁월한 하나의 설교문과도 같다. 밑줄을 그어야 할 잠언들이 그득하다. 소개된 책들과 인물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면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로 깨어나는 연습’에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온다.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말한다. “기억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이 외친다.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야곱이 소리쳤던 그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집(벧엘)이었다.
저자는 이 땅의 사람들도 교회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고백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교회 밖에서 그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갈구했던 ‘더 많은 것’ ‘더 많은 존재’ ‘더 깊은 깨달음’ ‘더 확고한 느낌’ ‘더 믿음직한 길’을 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과 교회 사이의 경계를 허물라고 말한다. 지금 거하고 있는 세상이 바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그분의 말씀이 들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순서대로 외움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의 실패,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십계명을 외우는 것과 같이 연애와 야생화에서도 똑같이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아름다운 소식이다. 나는 산상설교와 목련나무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에서는 존경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존중의 문화다. 이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존중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존경심이란 인간의 창조와 이해, 상상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천천히 자연을 응시할 때 존경심이 나온다고 말한다. “늪지의 작은 모기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바늘보다 작은 그들의 다리에 있는 검고 하얀 스타킹을 보라! 이 작은 다리에 있는 무릎과 당신의 살을 뜯기 위해 구부리고 있는 몸을 보라. 그리고 나면 모기와 당신은 피를 나눈 형제가 될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가려움은 모기의 생명에 대한 상이다. 모기를 잡고 싶으면 잡아도 좋다. 하지만 먼저 아름답다고 말하라.”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길을 잃는 연습’이란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일상을 떠나 자기만의 광야로 떠날 것을 권한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오직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약속만 갖고 지도 한 장 없이 기꺼이 길을 잃으려 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만일 아브라함과 사라가 흥미 있는 여행을 제안한 하나님께 감사만 표시한 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원래 있던 우르에 머물렀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즉 기꺼이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주도할 가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저자의 이 말은 강한 도전이 된다. “길을 잃어도 전혀 부담이 없는 일조차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커다란 힘이 길을 완전히 없애버렸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길을 잃어 보아야 길 잃은 무수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길을 잃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길 잃는 연습이다.”
저자는 인생에서 셀 수 없을 만큼 길을 잃었다. 결혼이 이혼으로, 건강이 병으로 끝난 적도 있다. 그는 길을 잃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고 토로한다. 가던 길에 머물렀다면 결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버려진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길을 잃는 것은 축복이자 영적 수행이었다. 그 같은 경험을 통해서 저자는 말한다. “보이는 안전한 길만 가지 마세요. 담대하게 길을 잃어버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세요.”
글 속에 흐르는 저자의 전체 사상은 퀘이커교를 창시한 조지 폭스의 이 말과 맥을 같이한다. “지구를 즐겁게 걸어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 계신 하나님께 반응하라.”
책을 읽어 나갈 때,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아내의 설거지 소리가 독서를 방해했다. 불현듯 걸려온 친구의 전화도 흐름을 깼다. 그때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곳이 당신의 제단이랍니다. 아이들과 아내, 친구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세요. 거기에 그분이 계신다고요.”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