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8) 감비아서 온 선교사 “WEC 한국본부 설립합시다”
입력 2011-10-04 17:53
1993년 겨울 나는 서울 대치동교회 교회당 신축 봉헌예배때 장로 임직을 받았다. 아내는 이듬해 권사 직분을 받았다. 직분을 받았음에도 우리 부부는 교회 밖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교회 일은 다소 소홀했다. 직분도 받았으니 교회에 더 많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96년 2월 어느 주일, 아프리카에서 오신 선교사 한 분이 교회로 나를 찾아오셨다. 깡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었다. 그분은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10여년간 사역하다가 잠시 귀국했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 부부와 유병국 선교사(WEC 국제선교회 한국본부 초대 본부장)와의 첫 만남이었다.
유 선교사는 웩(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이라는 선교단체를 통해 감비아로 파송됐다고 하면서 WEC를 소개했다.
유 선교사는 한국본부 설립을 위해 잠시 귀국한 것이었다. 그는 WEC 국제본부가 한국본부 설립을 위해 10년을 기도해왔고, 지금이 가장 적기로 여긴다고 했다. 나는 유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아이고, 또 꼼짝없이 잡혔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틀림없다”고 느꼈다. 유 선교사와 헤어진 후 우리 부부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 아닐까?” “여보,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한 새로운 일을 보여주셨는데 어떻게 여기서 ‘NO’ 할 수 있겠어요.” “음, 당신도 그래?”
나는 유 선교사에게 WEC 한국본부 설립에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준비를 위해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치과의사였던 상도제일교회 김정태 장로다. 그는 선교라면 언제든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후에 그는 치과 클리닉을 접고 선교사로 헌신하여 중앙아시아로 떠났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사랑의교회 옥인영 장로다. 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 의사였던 옥 장로는 나와는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후에 그는 10년 이상 WEC 한국본부의 이사장을 맡아 봉사했다.
그 외 목사님들과 장로님, 집사 등 11명이 설립 준비차 모이게 되었다. 아무도 WEC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창립자 CT 스터드의 전기를 읽으며 WEC의 정신을 배웠다.
WEC은 100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국제선교단체로 2200여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4개의 실천원리를 가지고 활동한다. 믿음, 거룩, 희생, 교제이다. 창시자 CT 스터드는 중국, 인도에서 오랜 선교 사역을 하고 다시 53세에 아프리카 콩고를 향해 떠났다. 그때 그가 남긴 말은 WEC의 모토가 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WEC의 특징 중 하나라면 철저한 믿음 선교(Faith Mission)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셨다면 우리 삶과 사역을 위한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공급하신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WEC 소속 선교사들은 자신의 필요를 교회나 개인에게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다. 이것은 100년 동안 전통으로 내려온 핵심가치이다. 인간적인 계획이나 프로젝트에 의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르기 위해 힘쓴다. 주로 남들이 가지 않는 미전도 지역으로 가기 때문에 위험과 어려움이 더 크다.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WEC을 조심하십시오. WEC은 수렁과 같아서 한 번 발을 디디면 빠져버리고 맙니다.” 결국 나도 WEC에 빠져버렸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