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하객과 이웃 사랑 어우러진 한국-페루 커플의 결혼식
입력 2011-10-03 18:44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신부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신랑은 그런 신부의 눈을 응시했다. 신랑 옷차림은 어설펐다. 턱시도를 입긴 했는데 몸에 맞지 않아 헐렁했다. 흰 운동화는 유독 눈에 띄었다.
주례자인 임철규(63) 순복음복된교회 목사가 “키스로 사랑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 둘은 주저하지 않았다. 페루 출신 남편 빅토르 오하라씨와 부인 이혜경씨는 2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순복음엘림소망교회(이복자 전도사)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신랑과 신부는 54세 동갑내기다. 두 사람은 6년 전 거리에서 만났다. 오하라씨는 광탄면 삼거리 부근을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때 한 여인이 앞서 걷고 있었다. 태워 주고 싶었다. 식당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씨는 남자의 호의에 선뜻 응했다. 10분간 오토바이를 같이 탄 그들은 서로 끌리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둘은 식당에서 만나 삼겹살을 구워 먹었고 오하라씨는 떠듬떠듬 한국말로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했다.
오하라씨는 파주 인근 공장 노동자다. 10년 전 페루에서 상처(喪妻)하고 한국에 왔다. 이씨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았다. 이씨 역시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됐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머리카락이 나지 않아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장애가 있었다. 한데 오하라씨의 따뜻함에 상처가 녹아내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그들은 곧 혼인신고를 했고 함께 살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이씨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이들 행복은 올 초 순복음엘림소망교회에 나오면서 더 커졌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복자(60) 전도사는 “이씨가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나간 경험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며 “이번 결혼식은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교회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파주시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국제 교회다. 나이지리아 가나 기니 우즈베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등지에서 온 근로자가 매주 모인다.
이날 결혼식 하객은 모두 이 교회 교인이었다. 하객들은 환호 속에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결혼식 하이라이트는 성혼 선포에 이은 헌금과 축가 시간이었다. 하객들은 부부를 위해 헌금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진 축가는 마치 아프리카 부족 축제를 방불케 했다. 영어 가스펠송에 아프리카 리듬을 사용한 ‘하야 하야’ 곡을 부르며 찬양했다. 아프리카식으로 예배당 한복판을 빙빙 돌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노래했다.
결혼식을 위해 기독교 봉사단체인 ‘괜찮은사람들’(이건종 장로)이 이·미용, 의료봉사를 담당했고 순복음복된교회는 빵과 수건을 선물했다. 한국노바티스에서도 비누와 물티슈를 제공했다.
결혼식을 마친 이씨는 “2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몸이 불편한 그이를 위해 손을 꼭 잡아줬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페루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디아모무쵸(사랑해요)” 하며 인사했다.
파주=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