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의정비 논란] 곳간 ‘텅텅’ 의정비 ‘펑펑’… 눈총 받는 지방의원들

입력 2011-10-04 01:46


전국 지방의회 10곳 중 4곳이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이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와 방만한 예산 운영으로 재정난을 겪으면서 자구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어서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라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 의회 중 101곳(41.4%)이 내년도 의정비 인상 계획을 세웠다. 48곳(19.7%)은 인상이나 동결 여부를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동결을 결정한 곳은 95곳(38.9%)이었다.

◇“재정자립도는 하위권인데…” 시민단체 반발=인천시의 경우 부평구, 동구, 서구, 남구, 연수구, 남동구 등 구의회가 의정비 인상안을 추진하자 지역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부평구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올해 기준 27.7%로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데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해 눈총을 받고 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3일 부평구의회의 의정비 동결을 촉구했다. 인천연대는 인천시 10개 구·군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의정비 인상과 심의위원회 구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낸 뒤 10월 초 답변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4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의정비를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 김해시의회도 지난달 개통된 부산-김해 경전철의 막대한 운영 적자가 예상되는데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 중이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해시는 경전철 이용객이 예상치에 크게 못 미쳐 민간 사업자에게 앞으로 20년간 한 해 700억원 이상의 최소운영수입보장비를 지급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경기도 용인시의회도 용인시가 재정위기를 겪는 가운데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시는 경전철 사업, 공공청사 건립, 시민체육공원 조성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했다가 극심한 재정난을 맞았다. 경기도 양평은 재정자립도가 25.0%로 도내에서 꼴찌 수준인데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해 원성을 사고 있다.

의정비 인상을 추진 중인 광역의회는 광주시와 경남, 경북, 충남 등 4곳이다. 또 지난달 26일까지 의정비 동결·인상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던 충북도의회는 최근 내년도 의정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충북도에 통보했다. 강원도의회도 내년도 의정비를 인상키로 최근 결정해 강원도에 통보했다.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전국 기초의회는 모두 97곳이다.

◇인상 근거는 공무원 봉급 인상과 물가상승=지방의회들이 반대 목소리가 높아질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근거는 지방의회 월정수당 기준액 상승이다. 월정수당 기준액은 지자체 재정력 지수와 인구, 물가상승률, 지방공무원 봉급 인상률 등이 반영된 기준 산식으로 결정된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이 5.1% 올랐고, 물가 상승률도 높았다. 또 과거 수년간 동결했거나 다른 지자체에 비해 의정비 수준이 낮다는 게 의정비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시의원들은 의정비 동결은 물가 인상비를 감안할 경우 결국 감액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광주시의회 관계자는 “6개 광역시의회 중 광주시의회 의정비가 가장 적고 2년째 동결한 바 있어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내년도 의정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정비 동결 또는 인상 여부는 행정안전부의 지방의원 의정비 결정절차 및 운영방안에 따라 각 지자체와 의회가 협의해 결정한다. 의정비 기준액을 변경하려는 지방의회는 의정비심의위원회를 구성한 뒤 공청회와 주민의견 수렴 등을 거쳐 10월 말까지 인상 폭을 결정해야 한다. 이후 12월까지 자치단체의 조례를 개정해야 다음해 의정비를 올릴 수 있다. 의정비심의위원회 수당과 여론조사 비용 등에는 400만∼1000만여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빚더미에 나앉게 된 지자체에 대해 예산 운용을 강하게 비판하던 지방의원들이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규정된 인상 요인에 따라 의정비를 올리겠다는 건 ‘제몫 챙기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방의회의 의정비 동결 또는 인상 여부를 모니터링하지만 자치단체 재정 상황을 감안해 권고 차원의 조치만 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