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고향 가족들 만나 눈물만…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34명 친정 나들이
입력 2011-10-03 18:57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 부이 리엔(27·여)씨는 지난달 24일 결혼 5년 만에 고향 베트남 하이퐁 무운아우 마을을 찾았다. 리엔씨는 그토록 그리던 가족을 만나자마자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리엔씨의 막내 동생 부이 푹(10)양은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고 있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앞마당까지 이동하는 데만 10여분이 걸렸다. 전북 정읍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남편 김병훈(48)씨는 매월 조금씩 모은 돈으로 푹양을 위해 한국에서 인삼을 챙겨갔다.
푹양의 소원은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비가 모자라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리엔씨는 “다음에 다시 고향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림책을 들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친정 식구들은 결혼 후 처음 방문한 사위도 반갑게 맞았다. 김씨는 “한국에서 사위가 왔다니까 저녁상에 특식으로 오리 백숙이 올라왔다”며 “베트남에서도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며 웃었다.
헤어지는 날이었던 지난 1일, 3년 전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 부이 반디(73)씨는 리엔씨의 볼을 계속 쓰다듬었다. 리엔씨는 눈물을 흘렸다. 반디씨는 말없이 김씨에게 오징어 한 보따리를 건넸다. 김씨는 “내 아내가 친정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며 “자주 왔으면 좋겠지만 형편이 어려워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이티 부이(22·여)씨도 지난달 24일 베트남 하이퐁 친정집을 방문했다. 3년 8개월 만에 재회한 일곱 식구는 끌어안은 채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한국여성재단 관계자는 “이 마을 여성들은 한 집 건너 한 명 꼴로 다른 나라로 시집을 갔다”고 전했다. 부이씨는 2008년 3월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남편 차기용(35)씨는 뇌병변 장애 3급의 기초생활 수급자다.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여태껏 처가 방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이씨는 친정을 방문하기 한 달 전부터 선물꾸러미를 쌌다. 가족에게 전해줄 생활용품과 옷가지 등을 상자에 꾹꾹 눌러 담았다. 처음 처갓집을 방문한 차씨는 베트남에서 답답함을 경험하며 한국에서 같은 처지에 있을 아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차씨는 “억지로 몸짓을 사용하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한국에 시집와 마음고생이 심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차씨는 “아내가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항상 그리워했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소원을 풀게 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삼성생명이 후원한 2011년 ‘날자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2일까지 7박9일 동안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34가족 124명이 베트남을 찾았다. 34명의 베트남 여성들은 친정을 찾은 셈이고, 한국인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등 90명은 처갓집과 외갓집을 방문한 것이다.
‘날(NAL·Now the Answer is Love·이제 사랑이 해답입니다)자’ 프로그램은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고향 방문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2007년에 시작해 올해까지 5년 동안 몽골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 4개국 출신 이주여성 157 가족, 567명이 혜택을 받았다.
하이퐁(베트남)=글·사진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