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민방위교육에 停電훈련 넣자
입력 2011-10-03 17:36
9·15 정전대란의 책임을 물어 최근 인적 쇄신이 단행됐다.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이 경질된 데 이어 국무총리실이 지식경제부·전력거래소·한국전력 관련자 17명을 징계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전력 수요를 잘못 예측하고, 대응에 실패한 관련자들을 문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정전이 인적 쇄신으로 일단락될 문제는 아니다. 제2, 제3의 정전대란을 막으려면 사후 조치가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방·산업·교통·통신·금융·의료 등 모든 분야의 시스템을 다운시킬 수 있는 전국 규모의 정전(Total Blackout)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처럼 제한된 곳에서 벌어지는 국지전보다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된 지역에서 대정전이 장시간 발생할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소름 끼치는 토털 블랙아웃
수돗물·가스 공급 중단과 생필품 부족으로 국민은 극심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출퇴근길에 5호선 지하철 열차들이 마포역과 여의도역 사이의 한강 아래에서 멈춰서 수많은 승객들이 칠흑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거나, 수백명을 태운 항공기들이 불 꺼진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정보기술(IT)·석유화학·조선·철강 등 우리 산업의 젖줄을 토털 블랙아웃이 강타한다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대정전은 약탈·방화·폭력·성폭력 폭증, 공장 조업 및 병원 수술 중단, 교통망 마비 등 막대한 피해를 냈다. 최근 칠레에서 일어난 정전대란은 전체 인구의 62%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런 점에서 안이한 판단과 대처, 허술한 정보 공유, 부실한 관리·감독 등 9·15 정전 사태에서 드러난 제반 문제점을 과감하게 개선하고, 허수(虛數)를 감안하지 않은 전력예비율과 현실과 동떨어진 매뉴얼도 최악의 상황을 반영해 뜯어고쳐야 한다.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노는 현재 조직을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 육해공군의 합동훈련과 한·미 양국의 연합훈련이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적을 격퇴하면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작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도상훈련은 물론 실전을 방불케 하는 기동훈련을 하는 것도 유비무환을 위한 것이다. 지식경제부·전력거래소·한전·발전회사들은 토털 블랙아웃을 염두에 두고 실제 상황 같은 도상연습을 해야 한다.
정부는 정전대란 방지훈련을 민방위훈련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 바란다. 특히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혹서기와 혹한기에는 이 훈련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각급 학교 학생, 군인과 경찰, 예비군과 민방위대원 등을 교육시킬 때에도 정전 피해와 행동요령을 숙지시켜야 한다. 공영방송은 정부로부터 위험 신호를 받는 즉시 행동수칙을 국민에게 알려야 할 책무를 잊어선 안 된다.
국민도 절전운동에 나서야
원전사고로 대정전 가능성이 높았던 일본은 절전 목표를 전년 대비 15%로 잡았지만 기업과 시민들의 참여로 21% 절전을 달성했다. 대기업과 공장들이 전기 수요가 적은 주말에 근무했고, 시민들이 절전운동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것처럼 우리 국민은 혹서기와 혹한기의 전력 공급 부족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보다 잘사는 프랑스 영국 국민보다 훨씬 많은 1인당 연간 전력 소비량을 낮추기 위해 ‘전기 과소비 추방 운동’에 나서야 할 때다. 그래야 올 겨울에 닥칠지 모르는 토털 블랙아웃을 막을 수 있다. 전력 관련 기관에만 정전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국민이 절전해야 대정전을 확실하게 막는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