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음녀의 금잔을 조심하라
입력 2011-10-03 17:54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은 두 도성, 즉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 있다. 하나님의 도성은 약속과 계시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도성은 사탄이 거짓 계시로 준 헛된 신화밖에 없었다. 인류 최초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에는 남신과 여신이 있었다. 남신은 태양신이고 여신은 달신이다. 고대 근동인들은 여신이 더 매혹적이고 모성애적이며 남신을 뒤에서 조종한다고 생각하여 여신을 더 가까이서 섬겼다. 그들이 최초로 만든 여신은 미와 섹스, 다산의 신인 이난나다.
그래서 이난나 신전에서는 온갖 문란한 성행위와 제의가 이뤄졌다. 또한 그들은 여신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공산(지구라트)을 만들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벨탑이다. 모든 지구라트 위에는 이난나를 섬기는 제단이 있었다. 그 이난나가 이집트의 이시스, 바벨론의 이쉬타르, 가나안 종교의 아세라, 그리스의 비너스와 아데미로 변형되었다. 이 음녀는 시대 시대마다 금잔을 들고 다니면서 세상의 탕자문화와 쾌락에 젖게 만든다(렘 51:7).
이 음녀의 유혹의 그림자가 이집트에서는 보디발의 아내로, 가나안에 와서는 드릴라로 나타났다. 드릴라도 얼마나 삼손에게 금잔의 유혹을 했는가. 이 음녀는 계시록에 와서 더 확연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이 바벨론의 음녀다(계 18:2). 음녀는 인간의 도성 건설을 위해 혼취케 하는 잔을 가지고 다니면서 유혹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이 음녀는 교회 안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했고 오늘날도 교만과 욕망의 바벨탑을 쌓게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음녀가 주는 포도주를 마시고 비틀거린다. 겉으로는 개혁과 갱신, 도덕과 윤리를 앞세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기득권을 잡기 위한 욕망과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분란과 다툼의 원인 제공을 하는 쪽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쪽은 더 큰 잘못이다. 모두 다 음녀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다. 사탄은 뿔난 도깨비 형상이나 드라큘라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매혹적인 음녀로 다가온다. 음녀를 조심하자. 일단 음녀의 포도주잔을 마시면 혼취해 버린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히 적군이 되고 미친 짓이 될 수 있다. 똑같이 음녀의 유혹을 받았지만 요셉은 승리했고 삼손은 무너졌다.
그대는 이 시대의 삼손으로 살고 있는가, 요셉으로 살고 있는가. 겉으로는 개혁과 갱신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음녀의 종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여 바벨론의 금잔의 유혹을 받고 있다면 당장 뿌리쳐라. 바벨탑에서 다시 하나님의 제단으로 돌아가라.
소강석 목사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