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교단장 릴레이 설교]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입력 2011-10-03 17:37
로마서 12장 14절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목사인 저도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처음은 참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결국 마음이 몹시 상하거나, 박해하는 자에게 대적하거나, 그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저주를 퍼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라면 우리 크리스천은 분명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보편적으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전하는 본문에 어떤 진리가 담겨 있을까요? 본문은 협의의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누가 밉고, 보기 싫고, 상대하기 싫고 하는 차원에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쓰여진 시대의 정황은 로마라는 세계 최강대국의 박해 시대입니다. 로마서가 AD57년경에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3개월 머물면서 쓴 편지입니다. 기독교가 박해받는 시기였습니다. 64년에 네로 황제가 국가적으로 박해를 시작해서 311년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황제에게까지 박해를 받았습니다.
역사의 박해 현장에서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을 원형경기장의 굶주린 사자 밥으로 삼고 즐기며, 그 시신을 불태워 정원을 밝혔습니다. 303년경에 갈레리우스 황제는 다른 신전에 성도들을 산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권력자들 앞에 성도들은 박해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축복해야만 했습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우리가 당하는 박해인 언론 편파 보도, 멸시, 비방, 왕따, 조롱, 미움, 시기, 위협, 폭력은 1세기 성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기지 못하고 대적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가 못난 것이어서 부끄럽습니다.
성도는 악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로마를 대항하여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기도하고 축복하는 게 더 큰 무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박해조차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박해를 받으면 드디어 하나님 백성이 됐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마 5:10∼12, 요 15:20, 살후 1:4∼7, 딤후 3:1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예수께서는 오히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박해받는 기독교인은 카타콤 지하 묘지에서 생활하며 예배드리고, 물고기 표시인 ‘익투스’ 비밀 신호로 교제했다고 합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성도들의 오래 참음과 지혜가 결국 AD 313년에 신로마제국이 탄생하면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마지막전쟁 중에 불리했으나,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고 승리하여 칙령을 내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택했습니다.
기독교 박해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미국 해외선교회연구센터에 따르면 세계 그리스도인의 순교 통계는 1990∼2000년 10년 동안 160만명이 순교했습니다. 북한은 분단 이후 3만명이 순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교회와 성도는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며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배재인 목사 (기침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