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올라키 사살 작전] CIA 본부서 원격조종 무인공습기 트럭속 표적 폭격

입력 2011-10-02 21:48

지난달 30일 오전 9시55분(현지시간) 아라비아반도의 예멘에 위치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무인공습기(드론) 기지. 미사일로 무장한 무인공습기가 소리 없이 활주로를 질주하며 날아올랐다. 비슷한 시각, 동아프리카 인근 국가인 지부티, 에티오피아, 세이셸 공화국 내의 미군 특수전 합동사령부 산하 기지에서도 무인공습기가 조용히 이륙했다. 무인공습기들의 목표 지점은 예멘 북동부 지역의 카셰프 마을에서 8㎞ 떨어진 다소 한적한 곳.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랭글리의 CIA 상황실. 여러 개의 스크린에는 무인공습기들이 목표지점 상공에서 보내온 지상 시설물과 함께 사람·차량 등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잠시 후 여러 개의 화면에서는 동시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 장면이 중계됐다. 수대의 무인공습기가 복수의 목표물에 한꺼번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목표지점에는 오사마 빈 라덴 이후 알카에다 최고의 거물 테러리스트인 안와르 알올라키(사진)와 사미르 칸이 있었다. 알올라키와 칸은 함께 도요타 픽업트럭을 이동 중 헬파이어 미사일을 맞고 사망했다.

알올라키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CIA가 살해 리스트 최상위에 올려놓고 뒤쫓을 만큼 위협적인 인물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영어에 능통하고 서구 문화에 익숙해 서방의 청년들을 선동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을 받는다. 테러 기획력도 뛰어나 지난해 10월 예멘발 미국행 화물기 폭파 미수사건, 지난해 5월 뉴욕 타임스스퀘어 차량폭탄 테러 미수사건, 2009년 크리스마스를 노린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폭파기도 사건 등을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이 암살된 칸 역시 미국 시민권자로, 그는 알카에다의 인터넷 잡지 영문판인 ‘인스파이어’를 운영해왔다. AP통신 등은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서 미국 시민이 목표물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수시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알올라키의 죽음은 알카에다의 가장 활발한 조직에 대한 중대한 타격”이라고 발표, CIA 살해 리스트 1번이 제거됐음을 공식 확인했다.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CIA가 무인폭격기 공격 명령을 지시하고 작전을 통제했다”며 “CIA와 군의 합동작전으로 무인폭격기들이 동시에 폭격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대테러 작전을 위한 무인공습기 활동은 전적으로 CIA가 관할한다. 정찰 활동은 물론 공격 명령도 CIA 랭글리 본부에서 영상 신호 등으로 판단해 최종 결정한다. CIA와 미군 당국은 이번 작전에 대해 구체적인 작전 상황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미 언론에 따르면 이번 공습 작전은 3주 전부터 구체적으로 준비됐다. CIA는 지난 2년 동안 알올라키를 집중 추적해 왔다. 지난 5월에는 CIA의 정보 제공으로 예멘 보안군이 알올라키가 숨어 있는 부락을 포위하고 교전까지 벌였으나, 그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당시 CIA의 무인공습기도 상공에 있었으나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했다. 민간인들과 뒤섞여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작전은 미군 특수전 합동사령부가 일부 개입하긴 했지만, CIA가 전적으로 주도했다. 이는 대테러 작전 과정에서 CIA의 비밀 군사행위가 미군의 특수부대만큼이나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행정부는 CIA가 미 국적자인 알올라키를 사살했다는 일부 비난에 대해 법무부의 비밀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내 이슬람 사회와 인권운동가들은 정부가 어떤 근거로 자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