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 점검] “슬픔에 빠진 가족 앞에서 기증 설득땐 같이 울죠”
입력 2011-10-02 21:07
김재석(37)씨는 지난달 20일 대전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술에 취해 쓰러졌다. 행인의 신고를 받은 119구급대가 꿈쩍도 하지 않는 김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뇌출혈이 너무 심했다. 사흘 후인 23일 그는 반혼수상태에 빠졌다. 뇌사의 시작이었다.
한국장기기증원(KODA) 추민영(32)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그날 김씨의 가족을 찾았다. 추씨는 김씨의 큰누나와 둘째누나에게 김씨의 뇌사 가능성과 장기기증에 대해 설명했다.
장기기증은 1박2일에 달하는 뇌사판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 중에 사망하면 기증도 실패한다. 추씨의 설명이 이어지자 김씨의 누나들은 혼수상태인 동생을 더욱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기증을 약속하려다 철회했다. 이튿날 김씨 가족이 모여 이 문제를 상의했다. 가족들은 2남4녀 중 다섯째인 김씨를 보내는 것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김씨가 삶의 끝에서 좋은 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은 가족 모두가 같았다. 가족들은 힘겹게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27일 오후 김씨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뇌사가 진행돼 곧바로 1차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의료인 3명과 변호사 1명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는 김씨의 신경, 동공, 자발호흡을 확인했다. 모든 검사에서 반응이 없으면 성인은 6시간 후 2차 조사를 한다. 2차 조사 후 뇌파 검사를 거쳐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뇌사를 판정한다. 김씨는 28일 오전 9시11분 최종 뇌사자로 판정됐다.
이날 오후 3시30분 김씨가 입원했던 건양대병원 의료진은 장기기증을 위한 수술을 5시간 넘도록 진행했다. 김씨는 간과 심장, 폐의 손상이 심해 신장 두 개만 기증할 수 있었다. 김씨의 신장으로 두 명의 환자가 29일 오전 새 삶을 얻었다.
한데 모인 가족들은 김씨의 마지막을 지켰다. 김씨의 경우는 그나마 순조롭게 진행된 경우다. 추씨는 “뇌사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장기가 나빠지기 때문에 시간과 늘 싸워야 한다”며 “가족과 면담하던 중 뇌사자가 사망해 기증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한 뇌사자의 심장이 갑자기 멈춰 기증을 할 수 없을 뻔한 일이 있었다. 기증을 약속한 뇌사자의 심장, 폐, 간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다행히 장기 적출을 바로 할 수 있는 병원이어서 그 자리에서 신장을 기증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접한 뇌사자 가족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버거워 쉽사리 기증을 결정하지 못한다. 코디네이터 최하리(29)씨는 “30대 아들이 아버지의 뇌사에 한동안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며 “아버지는 심장이 뛰고 손이 따뜻했는데 인위적으로 뇌사로 판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애가 타는 것은 뇌사를 통보하고 기증을 설득해야 하는 코디네이터도 마찬가지다. 최씨는 “뇌사자 가족에게 의무적으로 장기기증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건네지만 ‘뇌사자를 한번 더 아프게 하는 것 아니냐’며 눈물을 흘릴 때면 나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코디네이터들은 또 뇌사 추정자 의무 신고제 시행 이후 장기기증이 다소 늘었지만 여전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추씨는 “뇌사자 가족이 장기기증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숨기려는 분위기가 많다”며 “이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