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이 강단에… 학원가 ‘무등록 강사’ 판친다

입력 2011-10-02 17:56


서울의 한 사립대 4학년인 이모(23·여)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나고 서울 중계동의 수학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이씨는 이곳에서 매주 5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초·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이씨의 원래 업무는 시험지 채점 및 강의실 뒷정리다. 그러나 지난 5월 초등부 강사 자리가 갑자기 비면서 이공계열을 전공한 이씨가 ‘대타’를 맡았고, 이후 이씨는 계속해서 강의를 진행해 왔다. 이씨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서 “특히 초등부는 시간을 들여 수업준비를 할 필요도 없어 편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육청에 등록된 ‘정식 강사’가 아니라 ‘불법 강사’다.

학원가에 아르바이트생이 무자격 학원강사로 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8월15일 현행 학원법을 강화한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무등록 강사와 불법 과외교습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다.

◇아르바이트생이 버젓이 강사로=미국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모(22)씨는 지난 6∼8월 방학을 맞아 서울 강남의 한 영어학원에서 사무보조 학생 형태로 고용돼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장씨는 2일 “정식 강사 등록을 하지 않은 게 불법인 줄 몰랐다”고 했다. 서울 금호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박모(35)씨는 “무등록 대학생 강사는 전문 강사보다 싸게 일을 시킬 수 있고, 4대보험 등 번거로운 부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선호한다”고 말했다. 현재 인터넷의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에서 ‘학원’을 검색하면 ‘대학생 강사 모집, 휴학생 가능’ 등 대학생 강사를 뽑는다는 글이 1000여건에 달하지만 “4대 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학생 강사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은 학원 강사 자격기준에 “전문대학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는 자” “초·중등교육법에 의한 교원 자격을 소지한 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졸업자 중 교습하고자 하는 부문에 2년 이상 전임으로 교습한 경력이 있는 자”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부모들이 ‘대학생 강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강사 중 대학생이 있으면 학부모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학원들은 대학생 강사를 정식으로 등록해 강사 명단에 올리지 않고 아예 등록을 하지 않는 편법을 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및 학부모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학원 정보공개를 강화하면서 학원 운영자 및 강사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학원법에 따르면 학원이 강사를 채용할 때는 지역교육청에 채용통보서를 제출하고 매월 1일 강사의 연령·학력·전공과목 및 경력 등에 관한 인적 사항을 학원 출입구나 교습비 납부 장소 등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그러나 명단 공개만으로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며 ‘무등록 강사 노릇’을 하는 대학생까지 적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무등록 강사들은 아예 명단 자체에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들이 개인 과외=학원 강사들의 개인 과외도 문제다. 학원법에 따르면 학원에 소속된 강사는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금고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많은 학원이 학원 내에서 정규 수업 외 ‘보충수업’의 형식으로 수강생들에게 소규모 과외 교실을 제공하고 있다.

재수생 김모(19·여)씨는 사회탐구 과외 교사를 구하기 위해 다니던 종합 학원 원장에게 직접 문의했다. 원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명 행정고시 학원의 강사를 초빙, 자신의 학원 내 강의실에서 김씨가 학원 강사에게 과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런 과외 교실은 학부모가 먼저 학원에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적발이 쉽지 않다.

교과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교육청 단속 인원이 2∼3명이라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학원의 자정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