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이별, 그 후 서로를 떠나 보내긴 했던 걸까… 연극으로 본 ‘연애시대’

입력 2011-10-02 17:45


남자: 다 귀찮지 않아? 이제 그만 나랑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라는 생각 안 들어?

여자: 전혀. 당신은 드나 보지?

남자: 들지. 지쳤으니까. 우리 다시 한 번 결혼해 버릴까?

여자: 진심이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재결합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몇몇 작위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연극 ‘연애시대’가 설득력을 갖는 건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 때문이다.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고, 의도적으로 오해하고, 오해인 걸 알면서도 멀어지는 남자와 여자. 이혼했음에도 미련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남녀가 제각기 연애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을 이 작품은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내 맘 나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대사는 빙빙 돌려 말하는 듯하다가 정곡을 찌른다.

‘리이치로’와 ‘하루’는 아이가 사산된 뒤 이혼했다. 여자는 남자가 불행으로부터 도망친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여자가 싸우려고만 든다고 생각한다. 결국 헤어진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어정쩡하게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서로 이성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자 마치 제 애인의 일인 듯 신경을 쓴다. 그들은 곧, 이혼하기 전에는 단 한번도 둘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건 다름 아닌 ‘늦었다’는 깨달음. 이 연극에선 ‘늦었다’ 혹은 ‘안 늦었다’는 대사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횟수로 사용된다. 그때마다 주인공들의 감정도 요동친다. 예컨대 오랜 시간 묻어뒀던 오해를 뒤늦게 푼 후엔 ‘이미 늦었어’라는 대사가 나오며 암전, 재혼하는 남자의 결혼식장에서는 ‘아직 안 늦었어’라는 대사가 나오면서도 분위기가 가라앉는 식이다. 그러나 결말은, 연애에는 시점의 합리적인 판단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2006년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로도 방영돼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군데군데 드라마 장면들이 겹쳐진다. 김태형 연출은 “드라마 팬이 많아 부담되지만 원작 소설에 충실하려 노력했다”며 “소설과 드라마를 접하지 않은 관객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긴장과 이완의 끈을 놓았다 풀며 관객과 소통하는 솜씨는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두 시간여의 연극 한 편은 16부작 미니시리즈의 시적인 내레이션과 같은 매력을 포기해야 했다. 드라마 팬들이라면 아쉬울 것 같다.

일본 작가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이 원작. 탤런트 박시은의 연극무대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외 김영필 김다현 주인영 등이 출연한다. 다음 달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만 13세 이상 관람가로 전석 4만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