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유럽 재정위기와 긴축

입력 2011-10-02 17:35


긴축을 통한 재정위기 극복에 반대하는 의견은 주로 케인스식 정책의 효과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유동성 증대로 뒷받침되는 정부지출이 성장을 촉진시키고 그에 따른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해롭지 않다는 논의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에도 그리스 정부와 일부 학자들은 이런 논의에 근거해 위기의 원인을 투기세력에게 돌리는 뻔뻔함을 보였다.

핀란드에 이어 독일 의회에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안을 통과시키면서 그리스 디폴트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의 극심한 불안감이 한 고비를 넘는 느낌이다. 기금 증액안은 재정위기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 확대와 국채매입, 부실은행에 대한 자본투입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에 구제금융과 국채매입을 통해 지원하는 한편 부실해진 금융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 장치까지 마련해 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금 증액안이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기금의 규모를 더 키우면 재정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유럽재정안정기금은 기본적으로 유로존에서 재정이 튼튼한 국가들이 충당하는 기금으로 성립된다. 즉, 독일과 같은 유로존의 모범생들이 그리스 등 문제학생들의 재정 부족을 메워주는 구조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제약으로 회원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기금 증액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유로존의 재정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기금 확충은 차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기금 차입은 보유 국채를 담보로 민간 혹은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유동성 경색 우려 때문에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에 의한 기금 증액은 쉽지 않다. 결국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이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이 방안은 결과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통해 유로존 국가들의 부족한 재정을 충당해 주는 격이다. 즉, 유로존 재정위기 차단을 위한 재정안정기금 확충은 통화 공급을 통해 재정적자를 보전해 주는 전형적인 케인스식 정책 방안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감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동성 증대에 기댄 재정위기 방지책은 개별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제고 유인을 감소시킬 우려가 커 중장기적으로 유로존 국가들 국채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차입비용을 높여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것이다. 그리스 디폴트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는 유로본드의 발행도 재정건전성 제고 유인 감소, 유럽중앙은행 유동성 공급에의 의존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 해소는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뼈를 깎는 긴축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정부지출의 대폭 삭감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구제금융이나 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은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어려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것이다. 문제는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긴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디폴트 위기의 그리스에서의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혜택이 개인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권리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재정안정기금은 재정위기 차단을 위한 안전망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국민적 반대를 극복하고 긴축정책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긴축만이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