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방귀희] 복지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입력 2011-10-02 17:30


장애아가 성폭력의 대상이 됐다. 그것도 특수학교에서. 광주 인화학교에서 당연한 듯이 상습적으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2005년 세상에 알려졌다. 대책위원회까지 발족해서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몸부림이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곧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인화학교 성폭력 범죄자들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명도 높은 작가 공지영이 이 사건을 소설 ‘도가니’로 세상에 내놓은 것은 2009년이었다. 그때 잠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이내 외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2011년 영화 ‘도가니’가 대중 앞에 서자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꺼져버린 사건의 진실에 불을 지폈고 국민들이 그 불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언론에서 심층보도하거나 토론의 주제로 삼아 열띤 공방을 벌였고. 국회에서 도가니법 제정을 논하는가 하면 장애인시설의 인권 침해가 국회 국정감사의 주요 메뉴가 되고 있다.

시설의 주인공은 장애인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특수학교에서 발생한 장애인 성폭력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특수학교나 장애인시설은 장애인이 가장 안전한 곳이고 장애인이 가장 대접받아야 하는 곳인데 왜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이 억압을 받고 성의 노리개가 돼야 하며 왜 무시당하고 있는 것인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 시설이 이렇듯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을 시설의 주인이 아닌 수용자로 만든 법제도 때문이다. 정부가 장애인복지 정책을 만들며 장애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장애인의 머릿수에 따라 시설에 지원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지의 주체인 장애인이 복지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면 특수학교나 시설에서 장애인을 모셔가기 위해 서비스 질을 높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제를 모토로 했던 현 정부와는 달리 앞으로의 정권은 복지를 통해 권력을 창출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쉴 새 없이 복지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때마침 영화 ‘도가니’가 장애인복지 더 나아가서 복지를 우리 사회 핫이슈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복지 논쟁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복지 포퓰리즘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복지를 대중 인기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은 복지를 선행을 연출하기 위한 액세서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소리를 듣지 못해 무시무시한 성범죄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해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12살의 청각장애 아동이 6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은 복지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지라는 근사한 제도로 그런 사람들을 보호한 정부 때문에 그 끔찍한 사건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 도구로 삼지 말아야

복지를 시혜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복지 예산이 아깝고 복지 포퓰리즘이란 말을 함부로 내뱉게 된다. 복지는 우리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양극화 현상의 균형을 맞추는 처방이고 국가 발전을 위한 투자이며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 확보라고 인식해야 한다.

영화 ‘도가니’ 때문에 생긴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또 반짝 쇼로 끝난다면 인화학교 청각장애인들은 이번에는 사회적 폭력으로 상처만 후벼 판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복지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복지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사기 행위이다. 복지는 우리 국민의 생명이고 미래이다.

방귀희(방송작가·‘솟대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