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7) 여수의 유일한 국보 진남관
입력 2011-10-02 17:38
내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세계박람회(엑스포)가 열리는 전남 여수는 대대적인 국제행사 준비로 분주하답니다. 최근 둘러본 이곳에는 각종 행사를 위한 건물과 해외 방문객을 위한 숙소 등 신축으로 이른바 ‘상전벽해’를 실감나게 했습니다. 1500년 전 백제의 작은 마을로 출발한 여수에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이 즐비하지만 국보는 진남관(鎭南館)이 유일하답니다.
여수시 군자동의 진남관이 있는 자리는 원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 있었답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1598년(선조 31년)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했지요.
‘남쪽을 진압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국난을 잇따라 겪은 뒤 1716년(숙종 42년) 또다시 불에 타버리는 불운을 맞게 됩니다. 2년 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재중건하면서 지금의 면모를 갖추었답니다. 건물 규모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m), 건평 약 780㎡(240평)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요.
높은 언덕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둘레 2.4m의 민흘림기둥(밑동은 굵고 위로 올라가면서 직선으로 가늘게 한 기둥) 68개를 세운 진남관은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답니다. 팔작지붕의 양쪽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고 추녀 네 귀는 굽은 기둥으로 떠받쳤지요. 당시의 단청이 대부분 남아 있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1911년(순종 5년) 여수보통공립학교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교의 교실로도 사용된 진남관은 63년 1월 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38년 만인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답니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전라좌수영의 건축물로는 유일하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죠.
진남관 정면에 서 있는 망해루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 중건한 2층 누각입니다. 부대시설로는 진남관의 역사와 임진왜란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물 전시관이 있습니다. 또한 주말에는 여수시문화관광해설가가 활동을 하고 있어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답니다. 경내에는 전남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여수석인상이 세워져 있고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의인전술(擬人戰術)의 일환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석인상은 단정한 관복에 두 손을 모은 채 유유히 적을 바라보듯 당당한 모습입니다. 원래 7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1구만 남아 있는 문인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여수를 대표하는 국보 진남관이 엑스포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문화명소로 각광받기를 기대합니다.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