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엔 가혹, 유럽엔 관대… IMF 이중 잣대 논란
입력 2011-09-30 19:01
‘아시아에는 가혹, 유럽에는 관대.’
유럽과 아시아의 재정위기에 대응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방식이 사뭇 달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IMF는 1990년대 말 국가부도 위기에 놓였던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에는 가혹할 정도의 조건을 전제로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 결과 해당국들의 일부 금융기관이 통폐합되거나 국영화됐다. 하지만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국들의 금융기관에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IMF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국채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에는 반드시 상환 받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이 같은 조치가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차별대우라는 지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아시아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은 IMF 이사진에 유럽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돼 있다는 점이 차별적 조치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현직 IMF 총재는 그리스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이다. 독일 같은 경우 금융기관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는 했으나 대부분 유럽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일찌감치 그리스 채권 투자기관들에 대해 가혹한 처방을 내렸다면 유럽 금융위기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민간부문 손실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재정건전성과 금융시스템을 안정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IMF는 20년 전과 지금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대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IMF의 장관급 자문기구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의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의장은 “지역별 위기의 상호 관련성이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가 전 세계 경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섣부른 대응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게다가 최근 유럽 각국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국채 매입을 장려해 왔다는 점도 과감한 IMF의 조치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