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밀 유출 급증… 처벌이 약하다
입력 2011-09-30 18:44
지난 4월 삼성전자의 중국인 연구원 A씨는 백색가전 핵심기술을 중국의 경쟁사 하이얼로 유출하려다 검찰에 적발됐다. A씨가 빼돌린 자료는 A4용지 300∼400장 분량으로 가전제품의 핵심인 소음방지 기술과 향후 10년간 백색가전 제품의 추세 분석, 경영전략 등 기밀 사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는 지난 6월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죄질은 불량하지만 실제 외부로 유출됐다는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였다.
해마다 산업기밀 유출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는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밀 유출의 실태와 법적 대응 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식경제부와 산업기밀보호센터 등 정부 기관과 각 산업체, 관련 학회 임원들이 참석했다.
기밀 유출 사건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거나 시도하다 적발된 사건은 244건이다. 2004년 26건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에는 41건으로 늘어났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특허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국내 기업의 산업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국내 정보당국에 의해 적발된 건수는 189건이다. 만일 유출됐더라면 피해금액만 해도 369조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기밀 유출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지만 처벌 강도가 낮아 유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당국이 적발한 기술 유출 사건 중 200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사법 처리된 사건은 84건이다. 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28건(34%), 1년 이상의 형이 선고된 경우는 14건(17%)에 불과했다. 특히 산업기밀 외에 국가 존립과 관련된 군사기밀 유출에도 법원은 관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지난 3월 군사기밀 2·3급 문서 10여건을 미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예비역 대령은 지난 7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공범 2명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정병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기술 유출의 주체인 산업스파이가 전·현직 직원들로 초범이고 화이트칼라라는 특성 때문에 사법부가 관대한 처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국가지원에 의해 개발된 국가 핵심기술은 특허출원을 의무화하는 등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며 “산업기술 유출은 해당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와 국가안보까지 확대된다는 점에서 특별법 제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