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 ‘도가니’ 파장] ‘도가니’ 황동혁 감독 “가해자 신상털기 등 지나친 관심 안돼”
입력 2011-09-30 18:35
“가해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데 그쳐서는 안 돼요. 비슷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려는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광주인화학교 장애학생 성폭행 사건을 사회적 이슈로 확산시킨 영화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30일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관련,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 감독은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영화가 개봉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인화학교 문제가 사회·정치적 이슈로까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영화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교직원에 의한 장애 아동 성폭행이 몇 년 전에 실제 있었던 사건인데다 사학재단과 공무원들의 비리와 유착, 법조의 전관예우 관행 등 한국사회의 부조리들이 이 사건에 집약돼 나타나는 걸 보고 사람들이 공감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끔찍한 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들이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약자가 당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고발하려고 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당시 사건을 맡은 판·검사, 변호사 등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신상털기’까지 이뤄지고, 지나친 관심으로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사건이나 개인을 겨냥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법은 너무나 멀리 있다는 걸 얘기하려고 한 거다. 사태가 ‘마녀사냥’식으로 전개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광주인화학교) 폐교 얘기도 나오는 데 그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나, 선의를 가진 교사들이 엉뚱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는 제작사로부터 연출 제의를 받고 처음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알게 됐다고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끔찍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영화의 과장 논란과 관련, “아동 성폭행과 구타 등 핵심적인 내용은 영화보다 실제가 더 끔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사건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도 있다”면서 “영화 내용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 사건 관련자들에게 지나친 인신공격을 퍼붓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과거 예처럼 금방 끓고 금방 식어 버리는 ‘반짝 이슈’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가니’가 광주인화학교 학생들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논의를 차분하게 진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라동철 선임기자, 사진=이병주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