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파장] ‘항거불능’ 조항이 문제다… 신체·정신적 장애 고려 안해
입력 2011-09-30 23:03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원인이 된 ‘항거불능’ 조항을 놓고 법 개정 사항인지, 법 해석의 문제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현행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례법) 제6조는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초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도입한 이 조항을 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하면서 오히려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는 등 부작용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법원이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서 ‘항거불능’ 조항을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입법 기관이 해당 조항을 아예 삭제하거나 ‘항거불능’에 대한 양형 기준을 좀 더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서울행정법원 A판사는 30일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라고 볼 수 있을지가 재판의 관건”이라며 “이에 대해 뚜렷한 양형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C판사는 “항거불능에 대해 장애인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는 등 다른 사건보다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가 폭력으로 접근하더라도 지적장애인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법부가 이런 장애인의 특성에 무지한 탓에 대부분 불합리한 판결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최상열)는 지난 28일 12세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B씨(20) 등 4명에 대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정보공개 5년을 선고했다. 대전 고교생 16명이 지난해 5월 한 달간 지적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에서도 피해 여학생이 상황 판단력 부족으로 가해자들을 따르고 먼저 접근한 정황이 ‘항거불능’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돼 불구속 기소됐었다.
정치권에서는 ‘항거불능’ 조항으로 인한 피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아예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은 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건의 경우 ‘항거불능’ 성립요건이 엄격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며 ‘항거불능’ 조항을 삭제한 최영희 의원의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김재중 노석조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