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家 3대의 작품 한자리에 모인다… “고아원 퇴소 아이들 돕기 뜻 모아”

입력 2011-09-30 18:13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네요. 아버지 덕에 가족들이 한데 모이면 이번에는 사진 한 장 꼭 찍어놓아야겠습니다.”

국민화가 고(故) 박수근(1914∼1965) 화백과 자녀, 손자까지 3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아버지 뒤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인숙(67·전 인천여중 교장)·성남(64)씨와 성남씨의 아들 진흥(39)씨가 오는 7∼16일 서울 신도림 대성디큐브시티 백화점 내 갤러리디큐브 전시실에서 ‘박수근家 3대가 부르는 회상의 노래’ 전을 연다. 2005년 말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박수근家 3대에 걸친 화업의 길’ 전에서 처음 합동 전시회를 연 지 6년 만이다. 박 화백의 목판화 등 5점과 인숙씨 20여점, 성남씨 10여점, 진흥씨 5점 등 3대 작품 40여점이 선보인다.

성남씨는 30일 전화통화에서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번 전시회를 보며 많이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합동전시를 성사시킨 건 시인 김유권씨였다. 고아원 퇴소 후 오갈 데 없게 된 아이들을 위해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에 세 사람 다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전시 제안이 무수히 많았지만 시장논리만 있는 전시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장은 규모가 아주 작아요. 보잘 것 없을 수도 있지만 어려운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가 아버지의 정신과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듣자마자 하자고 했습니다.”

결정은 자연스러웠다. 성남씨에게 아버지는 서민의 삶을 체화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 예술가가 됐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식민지, 전쟁, 혁명, 굶주림 같은 걸 다 겪은 세대잖아요. 아버지는 마치 사계(四季)를 맞듯이 그런 시련들을 자연스럽게 견디면서 우리네 서민의 삶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서민이 아버지 그림 속에 있고, 그 아버지의 피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으니 힘든 이웃을 돕는 건 당연합니다.”

6년 만에 모인 건 작품만이 아니다. 전시 덕에 세 사람도 6년 만에 얼굴을 맞대게 됐다.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던 성남씨는 박 화백의 ‘빨래터’ 위작 파문을 겪으며 경기 파주에 정착했고 인숙씨 역시 한국에 살고 있지만, 호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진흥씨가 한국에 올 짬이 나지 않았다. 성남씨는 세 사람이 박 화백 작품 앞에 서면 제일 먼저 마주 보며 기쁘게 웃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탐하지 않는 가난한 마음이 아버지 그림 속에 있고, 그 마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버지가 충분히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