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빚어질까… 오정국 시집 ‘파묻힌 얼굴’

입력 2011-09-30 17:49


오정국(55·사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파묻힌 얼굴’(민음사)은 진흙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진흙시 연작이 압권이다.

“기꺼이 무릎 꿇고 절을 하듯이, 머리를 진흙 속으로/들이밀고, 벌거벗은 궁둥이만 보여 주시는/나의 어머니, 저렇듯 얼굴을 뭉개어/진흙이 되셨으니, 그 기쁨 홀로 누리시도다/진흙을 처발라 출구를 봉해 버린/참나무 불길을 견디시고 이기셨으니/그 고통 세세연연 당신 몫이옵니다.//중략 (오, 엉덩이로만 빛의 윤곽을 느끼시는/나의 어머니”(‘파묻힌 얼굴’ 부분)

아직 어떤 형상으로 빚어지지 않는 진흙이라는 소재를 통해 존재와 자아를 탐구한 시집은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이라는 시로 문을 연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점액질의 시간에서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갗이 찢어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중략) 여기에 고요한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진흙은 단순한 시적 대상이 아니다. 정의가 불가능한,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야생의 질료이며, 원초적 생명력에서 일상적 비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유와 감각을 포괄하는 일종의 추상체다. 시인은 미처 무엇인가로 빚어지지 않는 진흙 상태를 통해 무형의 세계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을 노래한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던 진흙 웅덩이가/빗방울이 떨어지자 동그랗게 입을 열고 건네준/이야기,//땅에 떨어진 열매들의 흐벅진 이야기./벌판을 끝없이 건너가고도 아직 철탑에 남아있는 전선들처럼//또다시 시작되는, 이런 이야기, 진흙 이야기”(‘진흙들-탕진의 열매’ 부분)

진흙은 그리움 혹은 한국적 정서인 한(恨)과 일맥상통한다. 무엇으로든지 빚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는 생을 닮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은 “진흙 시 연작은 일종의 모자이크”라며 “퍼즐의 조각처럼 가지런하게 맞춰져 진흙이라는 거대한 추상의 전체를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