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감정 분단’… 하종오 시집 ‘남북상징어사전’
입력 2011-09-30 17:49
이주민, 탈북자 등 자본주의 주변부 존재들의 삶을 시의 소재로 삼아온 하종오(57·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남북상징어사전’(실천문학사)엔 남한과 북한에 살고 있는 하종오라는 동명이인이 등장한다. 물론 상상이다.
“서울 시민 하종오 씨는 걸어서 평양 가고/평양 시민 하종오 씨는 걸어서 서울 간다/두 하종오 씨는 옛 비무장지대에 다다라/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돌아다니다가 마주치자/멋쩍어 눈인사하지만 동명이인인 줄 모르고/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릴지 서로에게 물은 다음/지방도시 사는 시민이려니 여기고 금세 잊는다”(‘두 하종오 씨의 순례’ 부분)
북한에도 자신과 같은 하종오라는 이름의 사람이 살아갈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시인은 많고 많은 이름 가운데 자신의 출생 연도인 1954년 생 동갑내기들에게도 이렇게 중얼거린다. “다 같은 사내아이로 남자아이로 태어났던/동갑내기 하종오 씨들은 남한과 북한에서/각각 다른 꿈을 꾸며 살아낸 줄 모른 채/한번 만나 통성명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동갑내기 하종오 씨들’ 부분)
시인 김수영이 4월 혁명의 열기 속에서 “하…… 그림자가 없다”라고 노래했듯 휴전 이듬해에 태어난 하종오는 수십 년을 분단시대의 시인으로 살아온 끝에 무엇이 그토록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박탈해버렸는지, 남과 북의 수많은 하종오 분신들을 통해 되묻고 있다.
“하종오 씨가 돌아온다 해도/고향 길 찾기가 어렵다/산모롱이 돌면서 눈에 담아 두었던/동구 밖 느티나무는 쓰러졌고/집 뒤란 오동나무는 베였고/우리 옆 감나무는 꺾였다”(‘이남 출신 하종오 씨의 귀향’)라거나 “하종오 씨는 직장인 시절에/개성공단에 체류했다/완제품 점검하는 담당이었던가/지금 실업자가 된 하종오 씨는/남다른 감회 없다”(‘실업자 하종오 씨의 시절들’)라는 시구들은 남북분단이 지정학적인 분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분단, 감정의 분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을 바꾸면 남한의 하종오는 북한의 하종오를 보고 싶다. 만나서 얼굴을 부비고 가슴을 맞대고 싶다.
정철훈 선임기자